[O2/우리 몸과 운동 이야기]고산증은 멀미처럼 체력과 무관… 적응하는 게 아니라 대응할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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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만년필 브랜드가 그 위에 겹쳐 떠오른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선에 놓인, 알프스의 최고봉을 뜻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소도시 샤모니에는 해발 4810m인 그 봉우리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하나 있다. ‘에귀유 뒤 미디’. 중간 도착지가 있는 해발 2317m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뒤 다시 케이블카를 갈아타면 약 20분 만에 몽블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당연히 매년 세계 도처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또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다는 콜로라도 주의 파이크스 피크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관광객들은 차로, 버스로 또는 기차로 정상에 오르는데, 빠르게 오르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약 1830m에서 4301m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고도를 짧은 시간에 오르는 게 마냥 즐거운 추억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충분히 고산 증세를 느낄 수 있는 높이이기 때문이다.

○ 사람마다 다른 고산 증세

대표적인 고산 증세로는 폐수종과 뇌수종이 있다. 각각 폐와 뇌에 물이 차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런 현상은 매우 극단적인 높이에서 나타나기에 보통 상황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그 대신 가벼운 고산 증세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탈수 현상과 어지러움, 두통과 메스꺼움, 심지어는 구토 현상까지가 모두 가벼운 고산 증세로 여겨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더 민감하고 둔감한지 예측할 수도 없다. 유사한 예로 배 멀미가 있는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배 멀미를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예측 방법을 알지 못한다. 배 멀미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사람을 배에 태우는 수밖에 없다. 고산 증세도 마찬가지다. 고산병에 잘 걸릴지 아닐지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산에 데려가 보는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해수면 환경에서 살기에 적합한 동물로 진화해 왔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이 진화 과정 속에서 산소가 희박한 고지에 적응하며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말이며, 따라서 그런 환경에 대한 일관된 적응 방법을 우리 몸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고도에 민감하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둔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고산 증세의 발현 여부에 따라 건강과 체력을 평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배 멀미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누가 느끼고, 누가 느끼지 않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고지에서의 반응은 결국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고지에 적응할 수는 없다

고산 증세에 대한 개별적 반응은 선수들의 고지 훈련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잘 알고 있듯이, 고도가 높은 곳에서 열리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적지 않은 운동선수가 고지 훈련에 매진한다. 이유야 간단하다. 고지에서 산소 부족을 경험하면 그만큼 인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몸도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도록 훈련되고 적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운동능력도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선수가 고지 훈련의 효과를 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운동선수들에게 고지 훈련은 세 가지 유형의 결과를 낳는다. 약간의 효과를 보거나, 효과가 전혀 없거나, 아주 몸을 망치거나. 결국 효과를 예측할 수도 없고, 있어 봤자 미세하게 향상될 뿐이다. 선수들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결과는 등산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다. 산에 더 많이 다니거나, 더 높이 오른다고 해서 고지에 적응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고지에 대응할 뿐이다.

이는 인간의 호흡계가 훈련으로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근육은 훈련을 통해 그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도 증가한다. 하지만 호흡계는 다르다. 훈련과 상관없이 일정한 기능을 유지한다. 그래서 적응하거나 훈련되지 못하는 것이다.

○ 고지 훈련 대신 마스크 쓰고 훈련?

여기서 반전 하나. 원칙적으로 우리나라에는 고산병이 존재할 수 없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2500m 높이에서부터 물리적으로 고산 증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1950m 높이이니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그나마 한반도에서 고지 증세를 느낄 수 있는 곳은 해발 2750m인 우리의 영산 백두산뿐이다.

그러나 증세 자체가 나타날 수 없다고 무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고, 때로는 ‘높이’에 아주 민감한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을 위한, 만일을 위한 팁 하나. 일단 물을 많이 마셔라. 높이 올라갈수록 탈수가 빨라진다. 산을 오르는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수분이 빠져나갈 뿐만 아니라 호흡을 통해서도 수분이 쉽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고지에서는 하루에 약 1L의 수분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서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충분한 수분 섭취는 고산 증세를 최소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가능한 천천히 산에 오르고, 중간중간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에 하나 증세가 나타난다면 즉시 하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아무런 약도 효과가 없을 것을 확신한다.

간혹 고지 훈련 대신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면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고지 환경의 특성은 산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스크만으로는 산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공기 유통이 잘 안 되는 상황만을 연출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마스크만으로 고지 환경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대택 국민대 교수(체육학) dtlee@kookmin.ac.kr
#고산증#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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