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세상 속 과학, 과학 속 세상]비료가 되는 플라스틱으로, 플라스틱이 될 식물을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바이오 플라스틱이 꿈꾸는 에코토피아

바이오 플라스틱은 식기, 화분, 문구, 자동차 내장재, 건설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친환경적 소재로 만든 투명 카누를 타고 에메랄드 빛 바다를 누비면 그 곳이 곧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가 아닐까.
바이오 플라스틱은 식기, 화분, 문구, 자동차 내장재, 건설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친환경적 소재로 만든 투명 카누를 타고 에메랄드 빛 바다를 누비면 그 곳이 곧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가 아닐까.
“또 하나의 목적은 그 플라스틱이 모두 ‘생물분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썩어 없어지는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플라스틱이 들판에 묻히면 비료로 환원될 수 있고, 이 비료는 새로운 농작물을 키우고, 이 농작물은 다시 새로운 플라스틱 원료로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순환이 무한히 계속되는데 이것을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거의 종교적인 열정을 담아 ‘안정상태 체계’라고 부른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쓴 소설 ‘에코토피아’(1975년)의 한 부분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미합중국에서 완전히 독립한, 북미 대륙 서쪽에 있는 가상의 국가. 생태계(Ecology)와 이상향(Utopia)을 합성한 이름처럼, 이 나라에선 에너지나 산업은 물론이고 법과 제도까지도 모두 친환경적이다.

작가는 속편이자 프리퀄인 ‘에코토피아 비긴스’(1981년)에서 무분별한 산업화에 따른 전 세계적 환경파괴 행위가 경제적 재앙을 부를 것임을 경고했다. 동시에 석유 고갈 이후를 대비해 대체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칼렌바크의 상상(또는 예측)은 30년이 훌쩍 넘어서야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말이다. 세계 각국이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한 2012년, 칼렌바크는 눈을 감기 전 어떤 상상을 했을까.

○ 나무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 세계에 불어 닥친 바이오(Bio) 바람이 거세다. 가까운 미래에는 전 세계 소재업계를 좌우할 태풍의 핵이 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석유 생산량이 곧 정점을 찍게 된다는 현실 때문이다. 석유가 부족해지면 값이 올라가고 당연히 석유를 원료로 하는 원자재의 가격도 오른다. 그런 가운데 플라스틱 원료로 주목을 받는 것이 식물이다. 아직은 바이오 플라스틱 가격이 같은 품질의 석유화학 제품보다 20∼30% 비싸지만, 이는 머지않아 역전될 것이다. 가공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환경오염과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인 석유 사용의 대체재로 환경 측면에서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나 시장조사 업체들은 연이어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에 관한 낙관적 전망치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 컨설팅회사 넥샌트는 “2005년부터 이 분야에서 두 자릿수의 성장률은 통상적인 것이 됐다. 향후 5∼7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세레사나 리서치는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이 연평균 17.8%씩 성장해 2018년에는 28억 달러(약 3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스위스의 HKC도 “바이오 플라스틱은 2025년까지 플라스틱 제조에 쓰이는 석유 소비를 15∼20% 감소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처리’와 ‘원료’ 중 친환경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석유로 만들었건 식물자원으로 만들었건 땅에 묻으면 미생물이 금방 분해하는 것을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 부른다. 반면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은 기존에 사용하던 석유화학 원료를 식물자원(바이오매스)으로 대체한 것이다. 고(高)유가 시대가 지속되자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그룹이나 산업계의 이슈는 점차 생분해에서 바이오베이스로 옮아가고 있다. 김창현 KAIST 박사(화학공학)는 “많은 나라의 쓰레기 정책이 매립이나 소각에서 재사용 또는 재활용 쪽으로 가고 있다”며 “생분해성보다는 식물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발효시켜 석유원료를 대체할 것인가가 핵심 이슈”라고 설명했다.

○ 화장품 용기부터 자동차 내장재까지

바이오 플라스틱은 지금 어디서 쓰이고 있을까.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해도 바이오 플라스틱은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 선두에 미국 최대 음료회사 코카콜라가 있다. 이 회사는 이미 20년 전 재활용 용기를 도입했다. 2009년 내놓은 ‘플랜트보틀 PET’ 포장음료를 지금까지 약 100억 병이나 팔았다. 코카콜라 측은 올 2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 ‘바이오 콘퍼런스’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하려는 것은 단지 가격적인 부분이나 재정적 이득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회사의 책임감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현재까지는 마케팅적인 노림수가 더 커 보이지만, ‘세계 1위’의 강한 자신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케첩 생산업체인 미국의 하인즈 역시 같은 재질의 바이오 PET을 사용하고 있다.

주요 고객업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자동차다. 도요타는 지난해 실내면적의 80%가량을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대체한 ‘사이(SAI)’를 선보였다. 크라이슬러, 혼다, 포드 등 다른 회사들도 일부 내장재에 전분이나 밀짚을 10∼30% 사용한 자동차를 내놓고 ‘친환경’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자동차시트나 플로어매트(깔개), 타이어보강제, 대시보드 등에 바이오 혼합제품의 활용도가 높다. 코리아바이오경제포럼 회장인 유영제 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는 “우리나라 자동차들도 수출을 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은 원료를 써야 한다’는 등의 환경규제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기준이 차츰 강화되고 있어 차량 내장재 중 상당 부분에 바이오 플라스틱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유아용품(식기세트), 산업용 포장재(CD·DVD 케이스, 화장품 용기), 문구(바인더, 테이프), 전자제품(프린트 카트리지 커버, 휴대전화 배터리 커버), 건축자재(장판, 벽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이 활용되고 있다. 곧 바이오자재로 지은 집에서 바이오밥솥으로 만든 밥을 먹으며, 바이오TV에서 나오는 스포츠중계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

○ 겨우 첫걸음 떼려는 한국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한 도요타자동차 ‘SAI’와 SK케미칼의 ‘에코젠’으로 만든 생수병 이미지.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한 도요타자동차 ‘SAI’와 SK케미칼의 ‘에코젠’으로 만든 생수병 이미지.
바이오 플라스틱 분야에서 한국은 아직 미개척지다. 수요 측면에서도 아직 붐이 일지 않고 있고, 공급을 할 수 있는 기업도 많지 않다. 정부 투자도 아직 적다. 2010년 이 분야의 정부 연구개발 투자액은 64억 원이었다. 박경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PD는 “현재까지 정부 예산이 바이오 플라스틱과 관련한 대규모 과제에 투입된 적은 없다. 특정 과제나 제품 베이스로 기업과 대학에 소액이 지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2월 올랜도의 콘퍼런스에도 참석했던 그는 “최근 바이오 분야에서는 에너지보다 플라스틱이 더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라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한국은 아직 해외 바이오원료를 수입해 플라스틱을 만드는 수준이지만 민간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발간한 ‘바이오소재 활용기술-바이오 플라스틱을 중심으로’를 보면 한국에서 발표한 관련 논문은 1991년 1월∼2012년 2월 235편으로 세계 5위였다. 1위는 미국(842편)이었고, 2, 3위는 이웃나라인 중국(687편)과 일본(543편)이 차지했다. 같은 기간의 관련 특허는 한국이 86건으로 세계 7위였다. 미국이 압도적 1위(1795건)에 오른 가운데 일본(719건), 독일(193건), 영국(12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유 교수는 “현재 기술적으로는 바이오자원을 이용해 어떤 화학 중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은 현재 연구개발 측면에서도 많이 늦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성과라면 SK케미칼이 2009년 상용화한 ‘에코젠’ 정도다. 옥수수와 밀에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해 만든 에코젠은 회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친환경 고내열 투명 바이오 플라스틱’이다. 지나치게 긴 수사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 플라스틱 소재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김성우 홍보팀장은 “에코젠 외에도 ‘에코 플란’ ‘스카이 그린’ 등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들을 잇달아 개발해 현재 전자제품 외장재, 자동차 내장재, 화장품 용기 등 다양한 업종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바이오 플라스틱#에코토피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