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NBA 흑인 스타플레이어들의 패션 변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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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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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도 엘리트” 인식 변화, 힙합전사서 범생이 스타일로

단정한 모범생처럼 옷을 차려입은 NBA 스타들. 왼쪽부터 케빈 듀런트, 아마레스터드마이어, 드웨인 웨이드. 멀티비츠·내셔널지오그래픽.
단정한 모범생처럼 옷을 차려입은 NBA 스타들. 왼쪽부터 케빈 듀런트, 아마레스터드마이어, 드웨인 웨이드. 멀티비츠·내셔널지오그래픽.
미국프로농구(NBA)를 휘어잡으며 연봉 1000만 달러(약 115억 원)를 넘게 받는 흑인 스타들의 옷차림이 과거와는 180도 달라졌다. 대표주자는 올해까지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한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스의 케빈 듀런트(24)다.

듀런트는 경기가 끝나고 열리는 기자회견장에 주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학생용 배낭을 멘 채 나타난다. 셔츠는 목까지 단추를 채운다. 과거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되는 대로 입고 나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듀런트는 경기장 밖에서는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다니며 때때로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는다. 그의 배낭에는 아이패드와 성경책이 들어있다.

○ 힙합패션 이젠 안녕!

듀런트뿐만이 아니다. 올해 NBA의 강력한 우승후보인 마이매미 히트의 두 초특급 선수 르브론 제임스(28)와 드웨인 웨이드(30), 연봉이 2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뉴욕 닉스의 아마레 스터드마이어(29)도 마찬가지다. 단정한 재킷 안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거나 스포티한 면 티셔츠를 입고 니트로 된 조끼나 카디건을 걸친다. 여기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깔끔하게 다린 카키색이나 베이지색 치노팬츠를 입는다. 시력이 좋아도 굵고 짙은 색 뿔테 안경을 착용한다. 흔히 범생이(너드·nerd) 패션이라고 일컫는 복장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교회 오빠’ 내지는 ‘동아리 회장 오빠’ 스타일이다. 일종의 ‘엄친아’ 패션이다.

이는 기존 흑인 농구선수들 옷차림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동안 NBA의 젊은 흑인스타들은 힙합 가수들처럼 입고 다녔다. 축 늘어진 바지에 풍성한 웃옷을 입고 삐딱하게 눌러쓴 야구 모자에 백금으로 만든 십자가 목걸이를 주렁주렁 걸쳤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데니스 로드먼(51)이다. ‘코트의 악동’이라고 불린 그는 목부터 발끝까지 문신과 피어싱을 했고, 머리는 각종 색깔로 염색을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흑인 사회에서 따돌림이라도 당할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범생이 스타일은 따분하거나 여자아이처럼 보이는 것을 의미했다.

이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스타일 변화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인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흑인 농구선수들이 범생이처럼 옷을 입을 거라고 상상도 못한 사람들도 많다”며 놀라워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 엘리트 의식의 표현?

먼저 미국 내 흑인의 지위 변화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일하는 조엘 킴벡 씨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흑인들 자신과 흑인에 대한 다른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는 몸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면서 과거와 같은 피해의식이나 차별의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그들의 사회적인 박탈감을 반짝이는 보석 장신구로 표현하거나, 그들의 울분을 힙합 스타일이나 그래피티로 발산할 이유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것이다. 패션 트렌드 연구기관 ‘인터패션플래닝’의 박은진 수석연구원은 “NBA 스타라는 엘리트적 기반을 이제는 범생이 패션으로 표출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 흑인 선수들 자신의 가치관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동안 NBA 흑인 스타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액연봉을 받고 프로팀에 입단해 술, 여자, 그리고 마약에 탐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억 원짜리 슈퍼카를 수집하거나 요트를 구입하는 등의 사치스러운 생활도 일상이었다. 투자나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량이 떨어지고 인기가 하락하면 한순간에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간호섭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이들은 선배들에게서 봐왔던 이 같은 행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 의식 변화가 패션으로 나타났다고 해석될 수 있다. 올해 NBA에서 깜짝 스타로 각광받았던 제러미 린(24)이 하버드대 출신이면서도 겸손하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퓰리처상을 두 번 받은 미국 일간 보스턴글로브 기자 웨슬리 모리스 씨는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흑인 스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달라졌다”며 “흑인들은 자신들이 빠졌던 ‘흑인은 이래야 한다’고 외부에서 규정한 스테레오타입을 깨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NBA흑인 플레이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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