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포커스]“엔진이상, 비상” 외침에 정신은 아득하고 식은땀은 줄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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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항공학교 헬기 조종훈련용 시뮬레이터 탑승기

“이것은 지면으로부터의 고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것은 속도 계기예요. ‘노트’ 단위로 km의 1.8배 정도 되죠.” 헤드셋에서 강동연 준위(왼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몇 분뒤 찾아온 비상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와 함께 기자의 웃음도 사라졌다. 논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것은 지면으로부터의 고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것은 속도 계기예요. ‘노트’ 단위로 km의 1.8배 정도 되죠.” 헤드셋에서 강동연 준위(왼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몇 분뒤 찾아온 비상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와 함께 기자의 웃음도 사라졌다. 논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적의 열추적 미사일이 어느새 꼬리까지 따라붙었다. 갑자기 조종사가 엔진을 꺼버린다. 헬기가 아래로 떨어진다. 목표를 상실한 열추적 미사일이 아슬아슬하게 기체를 스친다. 조종사는 다시 엔진을 가동시켜 공격에 나선다.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죠. 이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회피기동’을 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차라리 엔진 배기구를 반대 반향으로 돌려버릴 것 같아요. 그러면 미사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겠죠.”

왼쪽 조종석에 앉은 강동연 준위(42)가 웃으며 말했다.

“아파치 같은 헬기로는 360도 회전도 가능해요. 전술적으로 큰 의미는 없지만. 한번 해볼래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4일 오전 조종사 훈련용 시뮬레이터(모의 비행훈련 장비)에 탑승하기 위해 충남 논산의 육군항공학교를 찾았다. 실제 헬기의 3∼8%밖에 안 되는 시간당 운용비로 동일한 훈련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실제 헬기와 동일하게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터. 체험이 끝나자 ‘무슨 일이 있어도 헬리콥터는 다시 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 비상 착륙

‘#1 ENG OUT’

UH-60(일명 ‘블랙호크’)의 계기반 위에 빨간색 경고가 켜졌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경보음이 긴박하게 귓가를 때렸다. 비상 상황! 1번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비상 착륙을 실시하겠습니다.”

강 준위의 침착한 목소리가 곧바로 헤드셋에서 흘러나왔다. 왼손에 쥔 컬렉티브(collective·로터의 회전 속도를 조절)가 저절로 아래로 향했다. 오른손에 쥔, 흔히 조종간이라고 부르는 ‘사이클릭 컨트롤 스틱(cyclic control stick)’도 알아서 움직였다. 양발을 올려놓은 페달도 강 준위의 움직임에 따라, 기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뒤이어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강 준위의 말들이 뇌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귓가에서만 맴돌았다. 그저 아침에 먹은 밥알이 하나둘씩 목구멍까지 솟아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는 것에만 몰두했다. 이내 활주로가 보이고, 그 위로 헬기가 미끄러졌다. 살았다.

“속이 안 좋죠?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 엔진에 문제가 생길 확률은 극히 낮지만, 미리 이런 상황을 연습해 봄으로써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지요.”

강 준위가 웃으며 말했다. 시계를 들여다봤다. 조종석에 앉은 지 고작 10분이 지나 있었다.

고정익 비행기와 달리 헬기에선 엔진에 이상이 생기거나 적의 공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사출장치를 이용한 탈출, 즉 이젝션(ejection)이 불가능하다. 조종사의 머리 위로 로터(프로펠러)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만든 공격용 헬기인 KA-52(일명 ‘엘리게이터’)만이 유일하게 이젝션이 가능하다. KA-52는 비상시에 로터와 기체의 연결 부분에 설치된 폭약을 터뜨려 로터를 분리한다.

대신 헬기는 로터 자체에 타격을 입지 않는 이상, 엔진이 멈춰도 로터가 계속 돌아간다. 만약 엔진의 회전 속도가 로터의 그것보다 느려지면,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자동으로 분리된다. 로터는 기존의 운동에너지(회전력)로 계속 돌아가고 이 사이에 기체는 천천히 아래로 하강할 수 있다(바람개비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날개가 돌아가면서 천천히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 즉, 불시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로터가 벌어주는 시간 동안 조종사는 재빨리 착륙할 지점을 찾으면 된다.

이번에는 지면과 근접해서 이뤄지는 ‘전술지형비행’을 한번 해보자며 강 준위가 말했다. 다시 헬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낮은 언덕과 나무들이 발아래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적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전시에서는 50∼100피트까지 낮게 날며 이동해야 한다. 그만큼 피해야 할 장애물도 많은 법. 나타나는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헬기가 상하좌우로 급격하게 움직였다. 겨우 눌러놓았던 꼿꼿이 선 배 속 밥알들이 다시 솟아올랐다.

“조종사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어지럽죠. 다만 반복된 훈련을 통해 이제는 적응이 됐죠.”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이 안쓰러웠는지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 제자리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블랙호크의 메스꺼움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바로 AH-1S(일명 ‘코브라’로 불리는 공격 헬기)의 시뮬레이터에 올랐다. 기자는 전방석에 오른발부터 몸을 밀어 넣었다. 폭 1m가 넘지 않는 코브라 헬기의 전방석에는 주로 사격을 담당하는 부조종사가 앉고, 후방석에는 헬기의 전반적인 움직임과 상황을 통제하는 정조종사가 탑승한다. 기체의 폭이 좁은 것은 정면에서 날아오는 적의 무기에 맞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서다.

“2.75인치 로켓이랑 20mm탄을 쏴 보죠.”

뒷좌석에 앉은 김주도 준위(40)가 말을 건넸다.

2.75인치 로켓은 살상 반경이 약 20m에 달하는 코브라의 주요 공격 무기 중 하나. ‘히드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집결한 병력 및 적의 차량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최대 사거리는 7.8km에 달한다. 유효 사거리 1700m인 20mm탄은 최대 750발까지 장착이 가능하며, 탄 한 발이 수류탄 반 개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 20mm탄이 불을 뿜는 ‘발칸’의 포구는 조종사 헬멧이 움직이는 쪽으로 자동으로 이동한다.

사격에 앞서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조종사들이 ‘하버링(hovering)’이라고 부르는 공중제자리비행. 이것이 잘 이뤄져 기체의 움직임이 적을수록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다.

“공중제자리비행은 헬기의 이착륙 시에도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에요. 직접 한 번 해보세요.”

‘유 해브 컨트롤’이라는 말과 함께 김 준위가 조종간을 ‘넘겼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던 헬기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틀어지는 게 느껴졌다. 사이클릭 컨트롤 스틱을 왼쪽으로 살짝 움직였다. 헬기가 왼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바꿨다. 가운데로 돌아오기 위해 이리저리 사이클릭 컨트롤 스틱을 움직여 봤지만, 그럴수록 헬기는 좌우로 더 많이 요동쳤다.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다.

갑자기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됐나 싶어 조종간에서 떠날 줄 몰랐던 시선을 위로 향했다. 붉은 땅바닥이 화면 위에 펼쳐져 있었다.

“지금 조종간을 너무 많이 움직여요. 500원짜리 동전 크기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종간의 움직임이 커질수록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더 많이 움직여야 하고, 결국 헬기 전체의 움직임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공중제자리비행은 크게 3개의 조종간이 유기적으로 같이 움직여 줘야만 가능한 거예요. 왼손에 잡은 컬렉티브는 로터에 전달되는 힘을 조절해 항공기의 동력을 조절해주고, 사이클릭 컨트롤 스틱은 로터의 회전면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기체의 움직임을 잡아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달은 항공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거예요. 결국 ‘3타 일치’가 되어야 하는 거죠.”

김 준위의 말에 “포기”를 외쳤다. 결국 그가 로켓과 20mm탄을 발사했다. 화면 위로 흙먼지가 굵게 피어오르는 모습들이 보였다.

“컴퓨터 게임은 조종사들보다 학생들이 훨씬 더 잘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가끔 인터넷에서 공격 헬기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보면, 비행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헬기에 대한 지식이 깜짝 놀랄 정도예요. 제원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런 학생들을 데려다 조종 교육을 시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논산=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조종훈련용 시뮬레이터#육군항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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