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내 인생을 바꾼 그곳]영원한 PD 송창의의 홍대 앞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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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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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들의 아지트 출입 6년, 자유와 배려를 배우다

서울 마포구 상암신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국내외 여러 밴드의 앨범 포스터. 내년이 환갑인 송창의는 요즘도 웬만한 젊은 뮤지션이나 아이돌그룹 CD는 꼭 사서 듣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마포구 상암신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국내외 여러 밴드의 앨범 포스터. 내년이 환갑인 송창의는 요즘도 웬만한 젊은 뮤지션이나 아이돌그룹 CD는 꼭 사서 듣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간판에는 ‘카타리나’라고만 쓰여 있었다. 문을 열고 친구의 뒤를 따라가니 여닫이문 두 짝이 또 나왔다. 육중한 무게를 느끼며 밀어낸 문 사이로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라디오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보인 건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남자들과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 땅∼,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여기가 한국 맞나?’ 동굴에 빠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했다. 1971년 봄, 서울 홍익대 앞. 밖은 화창한 날씨에 개나리와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 대학 2학년생 송창의(59·CJ E&M 방송부문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는 이 컴컴한 음악다방이 자신에게 펼쳐줄 신세계를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
○ 대한민국 히피

거리에서 공공연히 경찰이 가위로 남자들 긴 머리를 가차 없이 자르고, 30cm 자로 여성들 무릎에서 미니스커트가 얼마나 올라갔나를 쟀다. 흡연하는 여성은 알지도 못하는 남성이 와서 뺨을 때려도 찍소리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33m²(10평) 남짓한 카타리나에는 길에서 한 명 볼까말까 한 장발족과 ‘흡연녀’ 십여 명이 온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표정으로 음악에 빠져 있었다.

“40년이 넘었어도 그날 그 풍경은 생생하게 영상처럼 기억나는데 그 이후는 잘 생각이 안 나요. 그 다음 날부터 계속 거길 갔다는 사실밖에는.”

대한민국 극소수 히피들의 공간이었다. 송창의는 어느새 그들을 알게 되고, 같은 멤버가 되고, 주축이 돼버린 것을 알았다. 머리는 뒷덜미까지 내려왔고 긴 판탈롱 바지에 헐렁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다. 고무신을 신거나 태평양 건너 온 구제품 가운데 스웨이드나 가죽 신발을 남대문시장에서 사 신고 다녔다. 요즘 같으면 트렌드세터 같은 스타일이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해괴망측 그 자체였고, 사람들의 눈총은 따가운 정도만이 아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은 그 분위기에 홀딱 빠져버렸다. “음악과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워낙 백지 같았던 그의 몸과 마음은 카타리나가 긋는 대로 줄이 그어졌다. 그의 모든 행동과 사고의 구조가 싹 바뀌어 버렸다. 고등학교 2, 3학년 내내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한 그에게는 엄청난 변신이었다.

무학(無學)의 아버지는 영등포시장에서 목판부터 시작한 쌀장사를 키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문턱을 넘어보지 못한 어머니는 6남매 건사하느라 바빴다. 6·25전쟁 끝물인 1953년 태어난 장남인 그는 어머니 손을 좀 덜고자 만 5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공부란 건 하지 않았다. 커가면서 그저 극장에 붙은 영화 포스터며 사진을 넋 놓고 봤고, 라디오로 듣는 음악이 좋았다. 몰래 영화라도 보고 온 다음 날은 배우들의 동작과 대사를 그대로 옮겨가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수업시간에는 까불기 일쑤고 성적은 용케 반에서 중하위권이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날 화학 시간이었다. 화학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반에서 가장 많이 떠드는 학생 이름을 적어내라고 했고 당연히 그가 뽑혔다. 교무실로 그를 부른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 반에서 가장 나쁜 놈을 찾아내려고 한 거였다. 네가 떠들어서 다른 애들 공부를 방해했기 때문에 너는 나쁜 놈이다.” 멍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큰 충격이었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과서를 싸들고 도서관에 갔다. 2학년 개학하면서 마음먹었다. ‘학교에서는 입에 지퍼를 달겠다.’ 그러고는 졸업할 때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모범생으로, 숙맥으로, 빵집 보기를 돌같이 하며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순진한 청년 송창의가 한국 히피의 문턱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 송창의의 모든 밑천

카타리나는 히피들에게 제2의 집이었다. 매일 수업을 듣고선 서강대에서 홍익대까지 골목을 걸어 그곳까지 갔다.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없었다. 크리스마스건 명절이건 상관없었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집에 가기 전에는 꼭 들러야만 하는 곳이 됐다. 핑크플로이드, 킹 크림슨, 벨벳언더그라운드 같은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심취했다. 카뮈와 카프카와 사르트르와 ‘어린 왕자’에 빠져 지냈다. 백남준과 존 케이지에 흠뻑 젖었고 아방가르드 미술을 보고 논했다.

어려웠지만 즐겼고, 즐기니 좋아졌다. 우리는 카타리나 밖 너희와 다르다는 자존심과 약간의 자부심, 그리고 미량(微量)의 치기로 움직였다. 당시 인기 있던 명동의 음악다방 ‘세시봉’에도 한두 번 가봤지만 장삿속만 밝힌다는 생각에 다시 갈 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히피라고 생각했죠. 히피답게 살고, 보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는 정신무장 내지는 자기 세뇌를 한 거였죠.”

꿈? 그런 건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과 책이 조화로운 현재가 전부였다. 오직 들었던 생각이라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카타리나 문 밖을 나서면 모두 이상한 눈으로만 보는 걸 느꼈다. 아버지도 버스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면 외면해버릴 정도였다. 길거리에서 머리도 세 번 깎여봤다. “‘왜 머리를 못 기르게 할까’ ‘왜 여자들은 담배를 못 피우게 할까’ ‘왜 그렇게 남의 일에 신경을 쓸까’ 왜, 왜…. “너무 싫었어요. 우리가 죄인도 아닌데.”

모두들 도피자였다. 예민한 청춘들이었다. 톡 하고 건드리면 쨍 하고 깨질 것만 같은 민감함이 팽팽한 이들이었다. 적대적인 바깥에 대해 ‘우리는 특별하기 때문에 소외받고 욕먹는 거다. 우리가 루저라 그런 게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 대신 어렵다는 책을 엄청 읽고, 난해하다는 음악을 엄청 듣고, 전위적이라는 그림을 엄청 보고, 서로의 논리와 가치관을 놓고 열띤 토론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카타리나의 생활은 1977년 1월 말 MBC에 입사할 때까지 만 6년 동안 지속됐다. 바쁜 조연출로 일하다 보니 홍익대 앞으로 가는 발길은 점점 잦아들었다. 카타리나는 얼마 못 가 문을 닫았고, 드문드문 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에 그는 순간 숨이 멎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카타리나에서 보낸 세월에서 많은 것을 빼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사물과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세 친구’를 낳았고, tvN의 ‘롤러코스터’ ‘막 돼먹은 영애 씨’를 탄생시켰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모든 나의 밑천을 그 시절 그곳에서 깔아놓은 거였어요.”

○ 자유를 즐기되 남에게 피해 안가게

카타리나에서 송창의가 굳게 결심한 것이 있다.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비난하지 않겠다.’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리가 길다고, 옷을 요상하게 입는다고, 신발을 희한한 걸 신는다고 욕을 먹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집에는 가훈이 없다. 외동딸에게 특별한 가정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단 하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했지요.” 그 말 안에 모든 게 함축돼 있다. 자유롭게 사는 건 좋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남에 대한 배려가 꼭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카타리나에서 그의 핏속에 스며든 생각이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후회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결과만 가지고 아쉬워해도 화가 치밀 텐데 선택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 후회를 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가 또 어떤 선택으로 어떤 후회 없는 새로움을 보여줄지 기다려진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송창의#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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