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 ‘눈물의 무기한 장기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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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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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배우 한동완 씨(29)는 서울 대학로에 있는 배우세상 소극장에서 배우의 기본을 닦았다. 극단 배우세상 대표인 김갑수 씨가 2006년 대학로의 신축 건물 4층의 빈 공간을 빌려 극단 전용 공연장으로 만든 극장이다. 당시 극단 막내였던 한 씨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객석을 만들고 방음재를 설치했다. 하지만 6년간 이곳으로 매일 출근했던 것도 15일 끝난 연극 ‘서울테러’와 함께 막을 내렸다. 김 대표가 계속 오르는 극장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극장 운영을 접었기 때문이다. 한 씨는 “정들었던 곳을 떠나게 돼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학로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극장 밀집 지역이다. 극장 수는 1999년 31개에서 2005년 ‘대학로 문화지구’로 지정된 후 더욱 늘어 현재 150여 개를 헤아린다. 이 중 절반 이상은 150석 이하 소극장이다. 하지만 배우세상 소극장처럼 극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년 넘게 대학로의 마로니에 극장을 운영했던 연극인 정현 씨도 지난해 초 극장을 넘겼다. 양적으로 팽창한 가운데 대학로 소극장 부실화는 오히려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소극장협회에 따르면 최근 대학로의 소극장 10여 개가 부동산 임대 시장에 나왔다. 중개업자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최근 극장 임대물이 쏟아진 것은 아니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임대물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150석 이하 소극장은 수익성이 떨어져 새 주인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대사범대부설여중 뒤쪽 한 신축 건물에도 지하에 만든 소극장용 공간을 임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지만 6개월 넘게 세입자를 못 찾고 있다. 건물 관리인은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최근 임대료를 더 낮췄다”고 말했다.

소극장 부실화의 주원인은 대학로 일대 지가 상승에 따라 높아진 임대료다. 최근 10년간 대학로의 땅값은 2배 가까이로 올랐고 임대료도 덩달아 계속 오르고 있다. 문제는 150석 이하 소극장에서는 공연단체가 높아진 대관료를 감당하며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배우세상처럼 극단이 직접 극장을 운영하며 자체 제작 공연을 올리는 경우에도 임대료 상승을 못 견디는데 대관을 해서 공연하는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대학로에 무기한 공연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기 공연에 들어가면 새로 연습을 하거나 세트를 제작할 필요가 없으니 할인티켓을 통한 박리다매로 버티는 것.

소극장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대학로에서 무기한 공연 중인 작품은 51개. 이 중 ‘생계형 장기 공연’이 상당수라는 분석이다. 최윤우 협회 정책실장은 “3, 4년 전만 해도 장기 공연 작품이 20개밖에 안 됐는데 두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 이 중 80% 이상이 코믹이나 성인물이다. 상업물을 올려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장 부실화가 대학로 전체 상업화 추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대학로 소극장들의 부실화를 막을 방도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의 대형 공연장이 속속 들어서고 공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들도 대학로에 부설 시설을 지으면서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극장 건물주들은 공연장을 임대수입이 더 높은 당구장, 비디오감상실, 노래연습장 등으로 전환하려 해도 허가가 나지 않아 재산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소극장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정부가 대학로 극장주에게 경상비 정도 비용을 지원해 공연단체의 대관료 부담을 낮추는 것이 절실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올린 상태”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연극#대학로#장기공연#무기한 장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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