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원전사고는 과학의 실패 아닌 전형적 人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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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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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원자력이다/이정훈 지음/273쪽·1만2800원·북쏠레

2011년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수소 폭발로 ‘녹다운’됐다. 대지진과 쓰나미는 2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지구촌은 일본 원자력발전소가 통제 불능 상태로 폭발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 1945년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두 발의 위력과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참상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우리는 원자력에 대한 막연하지만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로 국방 안보 원자력 분야를 취재해온 저자는 “이 같은 인류의 공포가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과장해 바라보게 했다”고 말한다. 이번 사고로 죽은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허용치 이상으로 방사선을 쬔 피폭자도 나오지 않았다. 요시다 마사오 후쿠시마 제1발전소장의 식도암 진단도 이 암의 잠복기간이 5년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사고를 수습하다 쬔 방사선 피폭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발생 원인과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원전 용지를 쓰나미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건설한 점 △유사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설치해 침수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 점 △원전과 연결된 전기시설을 약하게 지어 튼튼한 전력망을 구축하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이 사고를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결론 내린다. 이는 역설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원자력을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전해준 ‘제2의 불’(‘제1의 불’은 신이 가지고 있던 자연 그대로의 불)의 뒤를 잇는 ‘제3의 불’에 비유한다. 불 덕분에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켰듯 제3의 불인 원자력이 앞으로 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저자는 “원자력을 제2의 불처럼 제때에 켰다 끌 수 있게 하고, 사고가 나도 바로 끌 수 있는 소방서를 만들어놓는 나라가 21세기의 강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정전사고가 일어났고, 원전 간부들이 이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인류의 진보를 보장하는 제3의 불이라도 관리가 이런 지경이라면 신뢰를 얻기 힘들다. 원자력에 대한 맹목적인 찬성 또는 반대를 넘어 원자력을 제대로 알고 안전한 관리가 이뤄지는지 감시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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