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Bucket List Tour]수백만 년 전 내 고향,아프리카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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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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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cket List Tour | 동아일보 ― 삼성카드 공동 기획

《일생에 꼭 한 번.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어 적어본 ‘버킷리스트’. 여행전문기자로 일하다 보니 여행지로 삼을 만한 그런 곳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심심찮게 받는다. 이 ‘버킷리스트 투어’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됐고 한 달에 한 곳씩, 벌써 네 곳이 소개됐다. 이제 남은 곳은 두 곳. 오늘 순서는 공개한 리스트의 섯 곳 중 마지막인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Africa Safari Tour)’다. 아프리카는 벌써 예닐곱 차례나 다녀왔다. 그런데도 내겐 여전히 미지의 세상이다. 드넓은 대륙이니 당연하다 할 만도 한데 그 미흡함이 단순히 다 둘러볼 수 없었던 크기 때문만은 아닐 터. 너무도 다양한 사람이 너무도 다양한 환경에서 너무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건 자연이다. 산, 강, 바다, 호수, 사막, 고원, 늪…. 아프리카엔 인간 거주의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환경이 아직도 대륙을 점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기서 생명이 사라진 적이 없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년 동안 바보스럽다 할 정도로 여전히…. 인류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그곳 버릴 수도, 더 쉬운 삶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쉬운 선택에 삶을 던지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다. 현생 인류의 고향,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조상을 거슬러 오르면 궁극에 도달하는 바로 그 땅.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은 의미가 남다르다.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내가 미흡함을 털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마터호른’이라는 나미브 사막(나미비아)의 스피츠코페 바위산에서 어린이들이 나귀를 타고 바위를 오르고 있다.
‘아프리카의 마터호른’이라는 나미브 사막(나미비아)의 스피츠코페 바위산에서 어린이들이 나귀를 타고 바위를 오르고 있다.


아프리카를 가장 아프리카답게 체험

그런 아프리카로 향한 가장 최근의 여행은 ‘오버랜드 트러킹(Overland Trucking)’이었다. 오버랜드는 ‘육상’, 트러킹은 ‘트럭여행’. 풀이하면 아프리카 대륙의 어떤 지형도 돌파할 수 있는 튼튼한 사륜구동 트럭에 캠핑장비를 싣고 몇날 며칠 야영하며 주유하는 장거리 여행을 말한다. 어느 정도 상상이 되겠지만 이 여행은 쉽지 않다. 매일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음식을 지어 먹으며 슬리핑백에서 자야 해서다. 이동거리도 하루 평균 250km이며 찾는 곳도 사막, 바위산, 늪지의 섬, 협곡 등 오지다. 그런데도 굳이 내가 이 여행을 택하고 또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구 생명체가 발현되고 인류가 태어난, 그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자연을 맨몸으로 껴안고 그 풋풋한 싱그러움을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여행이어서다.

아프리카는 오버랜드 트러킹의 최적지다. 아니 이 특별한 여행이 탄생된 곳인 만큼 아프리카를 가장 아프리카답게 여행하는 방편이다. 오버랜드 트러킹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과 역사를 같이한다. 19세기 아프리카를 찾은 탐험대의 유일한 활동 수단이어서다. 트러킹은 이후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최적의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이 여전히 개척되지 않아서인데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트러킹 여행자를 위한 시설(캠프사이트 도로)이 잘 정비돼 있고 예기치 않은 각종 사고의 위험요소가 많이 배제돼 그만큼 더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럭 등 오버랜드 트러킹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대여해주는 렌털 업체 덕분에 여행이 좀 더 편리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4개국 섭렵 5500km 트러킹 대장정

내가 트러킹할 당시는 4월의 부활절 휴가철이었다. 그래서 캠프사이트마다 소형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가족 단위로 온 여행자로 넘쳐났다. 거의 대부분이 유럽인이었다. 당시 내가 선택한 것은 렌털 트럭을 직접 몰고 떠나는 자유여행이 아니었다. 5t 트럭에 화물칸 대신 캐빈(객실)을 설치하고 그 아래 공간에 캠핑장비를 수납한 개조트럭을 이용한 그룹투어였다. 10명 내외를 태우고 가이드가 직접 운전하면서 2일부터 56일까지 정해진 일정과 루트로 안내하는 노매드(Nomad·남아공 케이프타운 소재 오버랜드 트러킹 전문여행사)의 여행상품이었다. 식사는 동반한 아프리카 현지인 요리사가 매번 만들어 제공한다. 아침엔 시리얼과 토스트, 점심엔 샌드위치, 저녁엔 따뜻한 음식(스파게티 스테이크 바비큐) 등.

대륙 남단의 케이프타운을 출발한 트럭은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등 4개국을 20일간 주파한다. 총 5500km의 길고 긴 노정인데 북쪽에 이웃한 나미비아로 건너가서는 남회귀선(남위 23도 27분의 위선) 위아래의 거대한 나미브 사막을 종단한다. 이어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품은 ‘동물의 왕국’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트럭 사파리로 사흘을 보낸다. 다음 목적지는 보츠와나. 이번엔 칼라하리 사막을 가로지르며 지구상에서 가장 큰 습지인 오카방고델타를 찾는다. 여기서는 전통 목선에 짐을 싣고 늪지대의 무인도를 찾는데 거기서 문명을 등진 채 사흘간 야영하며 워킹 사파리(Walking Safari·걸어 다니며 동물을 관찰)를 즐긴다. 최종 목적지는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이루며 추락하는 잠베지 강의 거대한 낙수인 빅토리아 폭포. 폭포를 보기 위해 짐바브웨로 입경하기 직전 보츠와나에서는 초베 국립공원을 들르는데 칼라하리 코끼리의 최대 서식지인 이곳 초베 강에서 배를 타고 하마와 코끼리 떼를 살피는 리버 크루즈를 즐긴다.

나미브 사막(나미비아)의 소수스플라이 사구에서 트레킹 중인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들 모습.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그리고 가장 고지대에 위치하며 가장 규모가 큰 사구 (위) 오카방고델타의 습지를 여행 중인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들. 풀러가 삿대로 모는 모코로(전통목선)에는 여행자 외에도 무인도 야영에 필요한 텐트 등 캠핑장비가 실려 있다. (아래)
나미브 사막(나미비아)의 소수스플라이 사구에서 트레킹 중인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들 모습.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그리고 가장 고지대에 위치하며 가장 규모가 큰 사구 (위) 오카방고델타의 습지를 여행 중인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들. 풀러가 삿대로 모는 모코로(전통목선)에는 여행자 외에도 무인도 야영에 필요한 텐트 등 캠핑장비가 실려 있다. (아래)
인류 진화의 현장 추적하는 시간여행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기 전 꼭 알아야 할 지식이 하나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과 우리(현생 인류·정확히는 사람과의 사람속에 속하는 사람)도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와 똑같이 ‘사람과’에 속한 ‘유인원(Ape)’이란 점이다. 유인원이라면 영화 ‘혹성탈출’에서 ‘원숭이(monkey)’가 아니라고 포효하는 그 동물인데 정확히 기술하면 ‘영장류의 사람과 중에서도 꼬리가 없는 종’을 지칭한다. 굳이 이 사실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여행할 아프리카를 좀 더 살갑게 느끼려는 데 우리나 침팬지 등 다른 유인원의 진화무대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안다면 크게 도움이 되어서다. 또 하나는 전 일정 내내 즐기게 될 사파리 투어의 역사성을 파악해 아프리카 여행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최초 인류로 간주되는 호모에렉투스(직립원인·베이징 원인)의 생존수단인 사냥이 바로 우리가 사파리를 경험할 사바나(savanna·해발 1000m 내외 고지의 초원지대)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수렵 채취 시대에 인류는 사냥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했고 그 사냥감은 먹이사슬이 완벽한 이 사바나에 있었기에 인류의 진화무대 역시 이 사바나였다. 사파리는 그 현장을 쫓는 시간여행인 셈이다. ‘사냥’을 뜻하는 사파리(영어)는 스와힐리어(아프리카 토속어 가운데 하나)의 ‘사피리(사냥)’에서 왔다.

문명에서의 탈출, 트러킹의 묘미

자신 있게 말하건대 20일 트러킹은 누구에게나 평생 쏟아내도 모자랄 만큼의 색다른 감흥과 희귀한 체험을 안겨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오카방고델타의 무인도 캠핑이다. 사자와 얼룩말, 하마가 어울려 사는 벌판에 텐트를 치고 새벽과 해질녘에 야생동물을 찾아 워킹 사파리를 나설 때면 내 안에 잠자던 원시성도 깨어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또 나미브 사막 한가운데 사구지대의 데드플라이(바싹 말라버린 사막습지)에서 만나는 탄화목이 주변 사구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아름다운 풍경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에 눈물 흘리고 만다. 이뿐이 아니다. 사방팔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에토샤 팬의 무한 광대한 평원 한가운데선 나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 된 듯한 기발한 착각에 빠진다. 또 신들린 듯 추는 부시먼의 격렬한 몸짓에서는 아프리카에 충만한 대지의 강한 기운이 전해지고 빅토리아 폭포의 거대한 포말과 굉음 위로 드리운 선명한 쌍무지개에서는 영혼의 정화마저 느낀다. 그리고 매일매일 캠프사이트의 텐트에서 슬리핑백에 들어가 취하는 수면은 언제나 자연과 나를 하나로 이어주며 밤마다 하늘을 수놓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빚어내는 천체 장관은 언제나 나를 다섯 살 꼬마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이런 기막힌 체험을 단 20일 만에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방법. 그건 오직 오버랜드 트러킹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 주저하지 말자.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떠나라.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20일’이 될 테니.

아프리카=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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