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눈부신 트럼펫-감각적인 클라리넷과 현악… ‘능숙함’에 가슴 벅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 서울시향 말러 시리즈 대단원의 막 내려 ★★★★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2010년 8월 26일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2번 ‘부활’로 시작된 서울시향의 말러 시리즈가 2011년 12월 22일, 교향곡 8번이 전하는 구원의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작곡가 탄생 150주년에 시작한 심오한 출발에 걸맞은, 서거 100주년의 장대한 마무리였다. 열광적인 커튼콜이 이어졌고 말러가 언급한 ‘우주의 사운드’를 직접 체험한 청중은 못내 아쉬웠는지 공연장을 떠나기 주저하는 듯했다.

말러의 교향곡을 전곡 시리즈로 연주하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사서 하는 고생’이요 ‘악단의 자격’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1999∼2003년 부천 필하모닉이 처음으로 시도했고 해외에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사례가 있다. 국내에 말러의 저변이 약했던 시절 부천필이 이미 좋은 결실을 맺었기 때문에 서울시향의 부담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단지 완주했다는 사실보다 이제는 좋은 기록이 문제되는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리즈의 지상과제였던 ‘연주력의 향상’을 이루어 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관악은 스타급 단원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트럼펫 주자 알렉상드르 바티의 눈부신 연주와 클라리넷 주자 채재일의 감각적인 연주는 단연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 올릴 만한 수준이었다. 몇몇 스타플레이어로 실력 향상이 되지 않는 현악에 있어서도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단순히 악보를 맞추는 수준을 벗어나 작품이 요구하는 다양한 뉘앙스를 민감하게 표현해냈다.

전체 시리즈 중 탁월했던 공연으로는 1, 4, 9번을 꼽겠다. 이들 교향곡에서 정명훈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확고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고 서울시향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능숙한 연주력으로 지휘자에게 보답했다. 이들 곡 모두 말러 시리즈 이전인 2008년에 공들여 연주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격적인 시리즈에 앞서 익스플로러 시리즈로 ‘대지의 노래’(성시연 지휘)를 연주하고 10번 데릭 쿡 버전(제임스 드프리스트 지휘) 국내 초연을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 구성의 차별화를 꾀한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쉬웠던 점도 없지는 않았다. 7번의 경우 악단이 미처 곡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곡의 특성에 맞게 리허설 시간을 적절히 안배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3번 3악장 중간에 느닷없이 합창단이 입장하는 이해 불가의 공연 진행이나, 8번 공연의 ‘과잉친절’이었던 자막이 음악과 맞지 않는 미숙함도 간혹 있었다.

말러 시리즈 대부분 공연을 매진시킬 정도로 기염을 토했던 서울시향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명문악단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화려한 후기 낭만파 음악보다는 고전 레퍼토리에 승부처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악기와 성악의 도움을 받는 말러보다 기본 악기로만 구성된 베토벤에서 감탄을 이끌어내는 것이 몇십 배 힘들다. 서울시향이 충실한 기본기를 토대로 월등한 연주를 펼치겠다는 높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거대한 도전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 ‘김문경의 구스타프 말러’ 저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