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인천 자유공원과 제물포구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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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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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이 세운 한국 첫 공원안엔 그들만의 사교장이…

오늘날 우리 주변엔 많은 공원이 있다. 동네 길모퉁이의 쌈지공원부터 서울 여의도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도시공원까지 말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만드는 공공녹지인 공원은 이제 도심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시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은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탑골공원을 꼽는다. 탑골공원은 1897년 탁지부(국가 재정을 담당했던 관청) 고문으로 있던 영국인 존 브라운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제론 탑골공원보다 9년이나 빨리 만들어진 공원이 있으니, 바로 인천에 있는 자유공원이다.

○ 제국주의 열강이 만든 국내 최초 공원

자유공원은 애초에 만국공원이란 이름으로 1888년 조성됐다. 당시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청나라 등 여러 강대국은 인천항 개항 이후 그들의 거류지를 만들었다. 그 거류지를 내려다보는 가장 위쪽에 전망 좋은 땅이 있었는데, 열강의 외교관들은 이 땅을 누구의 소유도 아닌 여러 나라가 함께 사용하는 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초 공원의 탄생 배경이 제국주의 침략과 연관돼 있는 것은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당시의 계획 도면에는 공원의 이름이 영문으로 ‘Public Garden’이라 적혀 있다. 서양식 이름에 걸맞게 공원은 서구식 정원과 근대 건축물들로 꾸며졌다. 원래의 정원과 건물은 대부분 6·25전쟁 때 파괴돼 사라졌다.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해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들어서면서 이름도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공원은 전후에 새로 복구된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답게 아직도 몇 가지 의미 있는 볼거리들이 남아있다. 흔히 플라타너스로 불리는 양버즘나무는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다. 자유공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플라타너스로 추측되는 나무가 남아 있다. 지금도 인천 내항이 바라다 보이는 광장 아래편의 거대한 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또 아카시아라고 잘못 불리는 아까시나무도 이 공원에 사상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 텅 빈 사교장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무를 둘러보며 걷다보면 근대식 건물을 하나 만나게 된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쓰였던 제물포구락부다. 전쟁의 포화를 운 좋게 피해간 이 건물은 만국공원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곳이었다.

‘구락부(俱樂部)’는 영어 ‘Club’의 일본식 음역어다. 제물포구락부는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이었다. 인천 조계지에서 강력한 특권을 누리던 외국인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치의회를 만들었고, 자신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와 상호 견제를 위해 사교 모임을 만들었다. 1901년 완공된 제물포구락부 내부에는 사교실과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었고, 실외에는 테니스코트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원래의 내부 모습이 많이 변해 아쉽다.

제물포구락부의 개관식은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銀) 열쇠로 출입문을 열며 시작됐다. 그 후 이곳에선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음료를 마시고 무도회를 즐겼다고 한다.

나는 건물 중앙에 있는 높은 바에서 스케치를 했다. 의자가 꽤 높았지만 묵직한 안정감이 있어 편안했다. 사진을 찍은 후 돌아와서 작업을 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현장을 직접 느끼며 스케치하는 것만큼 즐거운 경험은 없다.

제물포구락부 건물은 구한말 미국공사 알렌과 고종의 주치의였던 독일인 의사 분쉬,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만든 에케르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차를 도입한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 미국의 이민사업가로 많은 한국인을 하와이에 보낸 데쉴러 등 수많은 외국인들이 스쳐간 곳이다. 그들은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춤을 추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고요한 실내 풍경에 오래 전 이곳을 채웠을 웃음과 음악, 무도회 풍경을 덧씌워보며 그림을 그렸다.

제국주의 열강의 외국인들이 떡하니 산 위에 세운 공원과 사교장을 옛날 우리나라 백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 백성들은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이곳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리는 내 마음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무대 위 배우처럼 성긴 침묵만 가득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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