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시장, 시장사람들]장터에 꽃핀 예술, 죽어가던 시장을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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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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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천시장 ‘예술가상인’

대구 중구 대봉1동 방천시장 골목길엔 예술작품이 가득하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왼쪽 큰 사진)이 대표적인 사례. 1990년대 이후 쇠락하던 재래시장은 최근 2, 3년 사이 젊은 청년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아 수준 높은 문화거리로 탈바꿈했다.
대구 중구 대봉1동 방천시장 골목길엔 예술작품이 가득하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왼쪽 큰 사진)이 대표적인 사례. 1990년대 이후 쇠락하던 재래시장은 최근 2, 3년 사이 젊은 청년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아 수준 높은 문화거리로 탈바꿈했다.
‘예술가상인.’

뭘 하는 사람일까. 합성어 같긴 한데, 그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하다. 찬찬히 낱말을 되뇌어 보아도 방점을 ‘예술’에 찍어야 할지, ‘상인’에 찍어야 할지 적잖이 고민스럽다.

이 모호한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곳이 있다. 주소는 대구 중구 대봉1동, 그곳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수성교 옆 신천제방(지금은 사라진) 아래’의 방천시장이다. 신천(新川)은 대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하천이고, 수성교는 여기에 놓인 12개의 다리 중 하나. 광복과 함께 형성된 이 곳은 쌀 시장으로 크게 번성하다 인근에 대형 쇼핑센터(대백프라자)가 등장한 1990년대부터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가던 이 재래시장이 요즘 들어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 중심에 그들이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상인은 아니지만 올해 3월 상인회에 정식으로 가입한 예술가들, 바로 예술가상인이다.

○ 묘하게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

시장 한쪽 골목에서 ‘보성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해영 씨(38·여)는 평일 아침이면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떡집과 마주한 ‘아이엠갤러리’ 문 열기다.

방천시장에서는 주인 없이 비어 있는 점포도 예술가상인들의 벽화로 산뜻하게 되살아났다(위쪽). 문전성시 3차 사업 프로젝트 매니저(PM)인 이우열 교수가 자신이 골목길에 설치한 금속공예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천시장에서는 주인 없이 비어 있는 점포도 예술가상인들의 벽화로 산뜻하게 되살아났다(위쪽). 문전성시 3차 사업 프로젝트 매니저(PM)인 이우열 교수가 자신이 골목길에 설치한 금속공예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님이 안 나오시면 적당한 시간에 제가 문을 열어둬요. 애들 그림이 많이 걸려 있는데 문이 닫힌 것보다는 활짝 열린 게 보기 좋잖아요. 저희 가게 손님들도 구경할 수 있고….”

갤러리 주인은 예술가상인이다. 초등학교 예술 강사인 사공영미 씨(32·여)는 3개월 과정의 ‘방천 어린이예술작가’(대구 지역 5∼13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모집) 교육이 끝나면 아이들의 작품을 이곳에 전시한다. 7월에 상설 전시공간 아이엠갤러리를 열었지만, 학교 강의가 있거나 다른 일이 있을 때는 문을 닫아둬야 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 씨가 먼저 열쇠를 맡아주겠다고 한 것이다.

“따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고마웠죠.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든 갤러리를 늘 열어둘 수 있게 됐으니까요.”

아이엠갤러리는 이달 말부터 4기 어린이들의 작품을 새롭게 전시한다. 이 씨는 드문드문 찾는 관람객을 위해 추운 겨울에도 어김없이 남의 집 문을 대신 열어줄 터다.

방천시장에서 이런 시장상인과 예술가 간 ‘공생관계’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방천 릴레이 리뉴얼 프로젝트’는 상점의 차광막이나 가판대 등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변모시켰다. 친한 예술가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 가게 문에 그림이나 예쁜 문구를 그려 넣은 상인도 많다. 반대로 예술가들은 시장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시장은 예부터 대중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아니던가. 이곳에서 그들은 작업의 ‘방향 전환’을 이루기도 한다.

금속공예가인 이우열 대구과학대 교수(보석주얼리과)는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분위기는 작업에도 큰 활력을 준다”며 “여기서는 일반 건물에서 작업할 때보다 더 스케일이 큰 작업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공방이름 ‘별따공방’은 멸종위기의 따오기(천연기념물 제198호)를 되살리는 것처럼 문화의 융화를 통해 시장을 되살리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수십만, 수백만 원 가치의 예술작품을 만들던 그는 5000원, 1만 원짜리 ‘메이드 인 시장’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해머를 두드린다.

○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


방천시장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2009년 3∼6월 추진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부터다. 대구미술가비평연구회의 주도로 추진된 이 프로젝트의 예산은 고작 5000만 원(대구광역시 2000만 원, 중구청 3000만 원). 당시 11개 팀 50여 명의 예술가가 모여들어 쇠락한 시장에 예술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빈 점포가 문화갤러리로 변신한 방천시장은 점차 입소문을 탔고, 이를 계기로 그해 가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전성시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한국건축가협회 주관으로 진행된 문전성시 1차(2009년 11월∼2010년 5월), 2차(2010년 6월∼2011년 3월) 사업에는 수많은 지역 문화예술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다. 예산도 6억5000만 원이라는 거액이 투자됐다. 저마다 독창적인 계획을 내세워 공모를 통과한 예술가상인들은 현재 17개 점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제이드갤러리’를 운영하는 류미숙 관장(41)도 그들 중 하나. 그는 사실 예술가가 아닌 산업용 섬유를 수출입하는 무역업자다. 예술가가 아닌 유일한 예술인상인인 셈이다.

“평범한 빌딩에 사무실을 내기보다는 시장이라는 대중적인 공간, 특히 예술과 접목할 수 있는 특별한 환경에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피스 갤러리’라는 사업계획서를 냈는데 덜컥 선정이 된 거죠.”

5평 남짓한 좁은 공간 탓에 최근 별도의 사무실을 내긴 했지만, 그는 계속 갤러리를 꾸려갈 생각이다. 주방공예 자격증까지 딴 그는 주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예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프로젝트는 방천시장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으로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1980,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인 고 김광석 씨가 대봉동 출신이란 점에 착안해 기획됐다. 우중충하던 길이 350m의 골목길은 높이 2.5m의 벽면에 모두 42점의 다양한 예술작품이 설치된 수준 높은 문화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3차 사업(2011년 4월∼현재)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현재 지역 예술인들이 방천시장에 입주하고 싶어 줄을 서 있을 정도”라며 “시장과 문화의 자연스러운 공존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트와 재미가 넘치는 시장

‘방구석에 처박혀서, 천년만년 있지 말고, 시장에나 놀러가서, 장이나 채워보세.’

‘방천시장에 오면, 천 개의 표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재미, 장보러 오실래요?’

방천시장 입구의 한쪽 벽면에는 ‘방천시장’을 소재로 한 수십 개의 4행시가 눈길을 끈다. 이처럼 시장 곳곳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토요 오! 오시장’ ‘토요 방천 컬처마켓’ ‘토요 반짝 예술시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온 주말 야시장은 대구 지역의 새로운 볼거리가 됐다.

1, 2차 사업에서 이정호 경북대 교수(건축과)와 공동 PM 역할을 한 신범식 상인회장(63·선산상회)은 “점포 수가 3년 만에 70여 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며 “처음에는 작가들이 와서 무슨 도움이 되겠나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동생 같고, 아들 같다”고 했다. 방천시장에서 20여 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김계출 씨(75·여·대흥상회)도 한마디 거든다. “아무래도 사람이 마이 댕기니까 쪼매라도 낫제.”

물론 귀 기울일 만한 쓴소리도 나온다.

조각가 정세용 씨(40·한림커뮤니케이션)는 이 교수와 함께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부터 참여한 유이(有二)한 예술인. 그는 프로젝트의 순수성이 변질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 입주할 무렵 예술가들은 버려진 가구는 물론이고 동물 사체까지 스스로 치워가며 폐허가 된 공간을 새롭게 바꿔나갔습니다. 별다른 혜택은 없었지만 공간을 바꾸는 재미가 있었고, 시장과 예술을 접목한다는 순수한 목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작가와 상인 간의 소통이 소원해진 측면이 있어요. 돈 때문에 상처를 받고 떠난 작가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천시장의 작업실을 계속 지켜나갈 계획이다.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

일부 상인도 늘어난 유동인구에 비해 직접적인 매출 효과가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상인은 “우리 시장에 사람이 많아진 건 맞다. 그래서 TV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많이 나왔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나. 매출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게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방천시장은 여전히 실험 중이라는 것.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몰라도 새로운 시도가 재래시장에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대구=글·사진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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