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세한도’ 속 풍경은 제주일까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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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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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강부언 씨 “대정향교 소나무”
나무전문가 ‘소나무-곰솔나무’ 추정… “중국시 내용 그려” 주장도… 의견분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년·국보 180호)와 제주 화가 강부언 씨의 ‘세한도’(2011년·오른쪽 아래). 추사 ‘세한도’의 오른쪽 나무는 노송이지만 나머지는 무슨 나무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그린 제주 화가 강 씨는 “추사가 대정향교의 노송을 보고 세한도 소나무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동아일보DB, 공아트스페이스 제공
서울 종로구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선 제주 화가 강부언 씨(50)의 개인전 ‘바람의 흔적’이 18일까지 열린다. 늘 바람이 부는 곳, 제주의 풍경을 그린 수묵화 전시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소나무 그림이 압권이다. 이와 함께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세한도’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인 1844년에 그린 조선시대 문인화의 정수다. 강 씨가 추사의 차가운 정신을 되새기며 그린 ‘세한도’는 추사 유배지 인근인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 씨는 “추사가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보고 세한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추사 ‘세한도’ 속 나무 가운데 오른쪽의 휘어진 노송이 대정향교의 소나무와 흡사하다는 말이다.

관람객들은 강 씨의 추론에 흥미를 느끼며 추사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한다. 추사 ‘세한도’에는 나무가 네 그루 나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오른쪽 두 그루는 소나무, 왼쪽 두 그루는 잣나무”라고 말해 왔다. 과연 그런가. 추사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맨 오른쪽 나무는 소나무가 확실해 보이지만 나머지 세 그루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나무 문화재 전문가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설명.

“추사 ‘세한도’가 실제 풍경인지, 관념상의 풍경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실경을 그렸다고 할 때 ‘오른쪽 두 그루는 소나무, 왼쪽 두 그루는 잣나무’란 말은 옳지 않다. 잣나무는 제주에서 자라지 않는다. 맨 오른쪽 나무는 소나무가 맞다. 하지만 나머지 세 그루는 곰솔나무로 보인다. 곰솔은 소나무의 일종이지만 소나무보다 잎이 억세고 길다. 관념 속 풍경이라고 해도 잣나무는 아니다. ‘세한도’의 발문과 ‘논어’에 나오는 송백(松柏)의 ‘백’도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 또는 침엽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경을 그린 것인지 아닌지도 궁금하다. 추사 연구가 박철상 씨는 “세한도는 추사가 연행사로 중국에 갔을 때 대학자 옹방강의 집에서 본 시의 내용을 화폭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본다.

“소동파를 흠모하며 옹방강이 지었다는 시를 추사가 직접 읽었다. 이 시에는 ‘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 이 시구와 제자 이상적을 떠올리며 ‘세한도’를 그린 것이다.”

박 씨에 따르면 제주의 실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한도’에 나오는 집의 모양이 중국풍이란 얘기도 이 같은 추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렇다고 제주의 실경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옹방강 시의 내용을 되살리면서도 제주에서 보았던 나무의 모습을 화폭으로 끌고 들어왔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제주 화가 강 씨는 대정향교의 소나무에서 ‘세한도’의 노송을 떠올렸고 그렇게 또 한 점의 21세기 세한도를 탄생시켰다. 추사 ‘세한도’는 이래저래 다양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래서 더더욱 명품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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