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넘치는 점 하나 완성에 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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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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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에서 선으로… 다시 점으로 회귀한 이우환 화백, 갤러리 현대서 ‘Dialogue’전

올해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뒤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 화백은 신작 ‘대화’에 대해 “더는 간략해질 수 없을 만큼 극한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그림은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 가운데 무한이 숨쉬고 기가 충만하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올해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뒤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 화백은 신작 ‘대화’에 대해 “더는 간략해질 수 없을 만큼 극한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그림은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 가운데 무한이 숨쉬고 기가 충만하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이보다 간결할 수 없다. 캔버스마다 회색빛 점 하나만 담겨 있다

“혹자는 간단하다거나, 사기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오랫동안 축적된 수행과 훈련의 결과다. 엇비슷한 형태는 가능하지만 그림 바깥으로 넘쳐날 만큼 에너지가 담겨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 하나 찍기 위해 씨름할 때가 많다. 호흡을 내쉴 때 그려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어렵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40∼50일이 걸린다. 예전에는 1년에 40여 점을 했다면 요즘은 10여 점도 힘들다.”

이우환 화백(75)은 15일∼12월 1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선보일 ‘Dialogue’전의 신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6월 24일∼9월 28일)을 가진 이래 국내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으로, 회화 10점으로 단출하게 꾸렸다(02-2287-3500).

전시에선 점 하나를 그린 ‘Dialogue’ 연작으로 세 개의 방을 펼친다. “아주 간략하게 극한까지 밀고 간 전시다. 그리지 않은 부분이나 흰 벽과 어우러지며 울림을 주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다. 그것은 아주 중립적이고, 더는 갈 수 없는 철저함이다. 구겐하임 전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준 것이다.”

뉴욕 전시에는 비평가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그는 세계미술의 중심에 섰다. 자신이 백남준, 중국의 차이 궈 창에 이어 아시아 작가로는 세 번째로 구겐하임 개인전을 연 데 대해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경계했다. “세계적이니 일류 작가니 하는 표현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작가에겐 작품이 어떻고 왜 문제가 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관계항’ ‘조응’ ‘대화’ 등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관심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바깥을 연결하고 상호작업을 하는 것, 안과 밖이 관계하는 장을 만드는 데 있다. 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안 통하는 사람들’과 부대껴온 작가에겐 바깥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과제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배운 점과 선으로 삼라만상의 양상, 우주의 무한을 펼쳐내는 작가. 그의 회화는 점에서 선으로, 최근 다시 한 개의 점으로 회귀했다. “나 자신을 줄이고, 자기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부분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다. 좀 더 넓은 공간성, 좀 더 큰 세계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작업을 서구에선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해석하지만 작가는 양식상으로 비슷해 보여도 상반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에 대해 ‘그것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정의했다면 내 작품은 ‘그것 외에 그 무엇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최소화하고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화가이자 조각가이면서 평론가 철학자 작가인 그와 나누는 대화는 심오한 담론에 가깝다. “마당을 깨끗이 쓴 뒤 다시 낙엽을 몇 장 흩뿌리는 작업이 바로 예술”이라고 들려주는 그는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천년만년 지나면 내 그림은 다 없어지고 만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문화예술은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자연은 사그라뜨리려는 것이라 했다. 양쪽 싸움에서 결국 인간은 질 수밖에 없지만 버틸 만큼 버텨서 그 양면성을 다 보게 하고 싶다. 예술이란 것의 작은 꼬투리, 힌트라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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