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故 엄인희 작가 ‘그 여자의 소설’ 다섯번 연출 맡은 강영걸 씨 “대본만 읽고도 가슴이 먹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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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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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강영걸 씨는 “‘그 여자…’를 무대에 올릴 때마다 초반엔 관객이 없다가 입소문을 타고 막판엔 객석이 꽉 찼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연출가 강영걸 씨는 “‘그 여자…’를 무대에 올릴 때마다 초반엔 관객이 없다가 입소문을 타고 막판엔 객석이 꽉 찼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죽기 전 인희에게 약속했어요. ‘네 작품은 내가 다 연출할 거다.’ 이제 겨우 세 편밖에 못한걸요.”

칠순을 앞둔 노연출가 강영걸 씨는 2005년 식도암 수술을 받아 식도가 없다. 위로 바로 음식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역류하지 않도록 옆으로 누워 식사를 한다. 암세포가 전이돼 한쪽 폐도 떼어냈다. 다른 장기도 안 좋아져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병원을 들락거려야 한다.

그런 몸을 이끌고 그가 지난주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렸다. 마흔여섯 젊은 나이에 숨진 엄인희 작가 원작의 ‘그 여자의 소설’이다. 1995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2001년 엄 작가의 별세 이후로만 네 번째다.

“인희의 스승이 오태석 선생인데 어느 날 제게 전화를 했어요. 당시 오 선생이 경향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는데 제자의 작품(‘저수지’)이 출품됐는데 이걸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하셨죠. 제가 읽어보고 너무 좋아서 사흘이나 설득해 간신히 당선작으로 뽑혔어요. 그런데 같은 해 다른 희곡(‘부유도’)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도 당선해 우리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죠.”

그런 인연으로 그는 엄 작가의 ‘저수지’와 ‘부유도’를 무대화할 때도 직접 연출을 맡았다. 엄 작가는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며 사회성 짙은 작품을 주로 발표해 왔는데 어느 날 들고 온 희곡이 ‘그 여자의 소설’(원제는 ‘작은 할머니’)이었다. 시집가고 1년여 만에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난 남편이 감감무소식이 되자 가난한 시집 살림을 돕기 위해 부잣집 씨받이로 들어간 여인의 가슴 아픈 삶을 다룬 작품이었다.

“대본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여권의식이 투철했던 인희가 대본을 쓰면서 ‘너무 약이 올라 죽는 줄 알았다’고 했지만 거기엔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승리가 들어 있었거든요.”

실제 연극에서 작은 할머니(성병숙)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일부종사의 미덕도 못 지키고 사회와 가장의 폭압에 무력했지만 끝까지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 한 가냘픈 여인의 감동적 초상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엄 작가는 4개의 판본을 남길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서양 연극과 달리 우리 연극엔 장면 장면마다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농축돼 있어요. 인희는 그걸 깨친 몇 안 되는 극작가였어요. 이 작품만 해도 각 장면에 복선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장면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 달라요. 칠순이 다 된 저도 이제야 그걸 깨달으면서 ‘인희야, 젊은 네가 여기까지 들여다봤구나’ 하고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연출한 100편 넘는 연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작품입니다. 그런 인희의 진가가 제대로 평가받을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무대화할 겁니다.”

그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작품’으로 드는 다른 작품들을 물어봤다. 세 편은 그와 명콤비를 이룬 이만희 작가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아름다운 거리’이고 다른 한 편은 김영무 작가의 ‘하늘천 따지’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3만 원. 02-743-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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