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허무는 허무일 뿐… 삶을 지탱하는 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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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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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컨트롤하는 건 쉬운 일이야. 그보다도 삶을 컨트롤하는 편이 더 어려워.”

“그럼 당신에게 죽음이란 뭐죠?”

“패배다.”

- 만화 ‘지뢰진(地雷震)’
오래전 일이다. 얼큰히 취해 귀갓길에 지하철을 탔다. 친구 서넛이 일렬로 앉아 졸았나 보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시끄러워져 눈을 뜨자 눈앞에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웬 험상궂은 취객 아저씨가 여학생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술기운에 무슨 짓이라도 할까 두려운 탓일까. 말리는 이가 없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분연히 일어나 다가갔다.

“그만하세요. 뭡니까.”

“뭐야, 넌 뭔데 간섭이야.”

멈칫했지만 겁은 안 났다. 친구 놈들이 여럿이니 뒤도 든든하고. 확 손을 낚아챘다.

“그만하라고.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오호, 그 아저씨 당황하더니 슬슬 딴 칸으로 간다. 그때 감동하는 여학생 눈빛이란. 근데 자리로 돌아오다 기절초풍했다. 애들이 없다. 헉, 조는 사이 다 내려버렸다.

주위에선 잘 했다고 칭찬인데…. 무릎이 덜덜 떨려 한참 헤맸다.

‘지뢰진’은 딱히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만화는 아니다. 1980년대 홍콩 누아르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작품이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인 이이다 고야가 주인공인데, 이 녀석 ‘민중의 지팡이’완 거리가 멀다. 냉정과 잔인을 온몸으로 내뿜는다. 어린 아이가 붙잡혀 있어도 그냥 총을 쏴 댈 정도니. 교훈적 내용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악당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흉악범이라지만 정상적인 인간이 없다. 온갖 수사로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기나 한다. 세상엔 정신병자들이 왜 이리도 많을까. 특히 10대나 20대 초반, 아직 어른이라 부르긴 어려운 ‘어린’ 사이코패스들이 이 만화엔 수시로 등장한다. 부담스럽고 소름끼친다.

그러나 검은 심연이 두텁게 밴 이 만화는 묘한 흡인력을 지녔다. 뭐, 주인공이 멋있어서이거나 혹은 악을 응징하는 쾌감 때문일 수도 있다. 허나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휘감겨 온다. 범죄를 소탕해도 인질을 구출해도 남아있는 여운. 그건 바로 ‘허무(虛無)의 허무’, ‘무가치함의 무가치함’이다.

7세 소녀 고이케 아야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보자. 이 아이, 영악하기 그지없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질 않는다. 난 아이니까, 법과 어른에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 틈새에 몸을 숨기고 이간질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그 오만함이 깨지는 건 현실과 마주한 순간이다. 살인자 손에 잡히고도 아야는 당당하다. 형사가 자신을 구할 테니까. 근데 고야는 아야를 그냥 내버려둔다(물론 범인을 방심하게 하려고). 아야는 그 순간 자신이 진짜 죽을 수도, 남의 고통이 내게도 올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상상이 아닌, 시체가 나뒹구는 ‘진짜’ 사건현장에서 얄팍한 과신이 산산이 무너진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대단하다. 의지나 신념은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그게 언제나 옳지는 않다. 더구나 독단이나 과신이라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지뢰진에 나오는 악당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 그들 역시 안타까운 과거 탓에 삐뚤어진 거지만, 아픔을 지녔다고 죄가 씻기진 않는다. 그건 범죄자를 잡을 땐 어떤 규칙도 개의치 않는 고야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마음 자체를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친구들이 있다는 믿음이 없었으면 취객 아저씨를 다른 칸으로 내쫓을 수 있었을까. 때론 실수하고 간혹 착각해도, 신념과 희망은 삶을 지탱한다. 다만 누군가에게 상처주진 말길.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제정신으로 똑바로 살아야 다리 뻗고 잔다. 스스로에게 패배하지 않는다. 잘못된 믿음은 가치가 없다. 허무는 허무할 뿐이다.

ray@donga.com  

레이 동아일보 소속. 처음에 ‘그냥 기자’라고 썼다가 O2 팀에 성의 없다고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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