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국 문화유산연구원장 “팔만대장경은 남해서 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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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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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국대 특별법회서 발표

“초조대장경은 1011년부터 1087년까지 77년 동안 판각(板刻)했고,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은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설치해 1236년부터 1251년까지 판각했다고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불교서지학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사진)이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의 제작 시기와 제작 장소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박 원장은 동국대 정각원이 13일 오후 5시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서 개최하는 ‘고려대장경 간행 1000년 기념 특별법회’에서 이를 발표한다. 발표 주제는 ‘고려대장경의 진실’.

박 원장의 새로운 견해 가운데 하나는 초조대장경의 제작 기간. 그는 초조대장경을 제작하는 데 77년 걸렸다는 지금까지의 학설이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팔만대장경은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판각했는데도 1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초조대장경 판각에 77년이 걸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초조대장경은 북송대의 개보판(開寶版) 대장경을 저본(底本·원본)으로 삼아 새겼기에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송의 개보판 대장경은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동안 이규보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 나오는 내용을 잘못 이해해 1087년을 완료 시점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1011년에 제작을 시작해 10년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두 번째 새로운 견해는 팔만대장경 제작 시기. 팔만대장경은 그동안 1236년에 판각을 시작해 1251년에 제작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원장은 대장경 각 경전의 간행기록과 ‘고려사’ 등의 기록을 정밀 검토한 결과 1233∼1236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237년부터 1248년까지 12년 동안 판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251년은 팔만대장경 완성을 기념하는 경축행사를 치른 시기이지 제작을 완료한 시기가 아니다. 그동안 경축행사를 종료 시점으로 잘못 이해했다. 대장경은 이미 그 3년 전인 1248년에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또 “해인사 대장경판은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해 판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판각 장소는 선원사가 아니라 경남 남해”라고 말했다. 팔만대장경 제작 장소에 관해선 그동안 △강화 제작설 △남해 제작설 △강화 남해 공동제작설 등이 제기돼 왔다.

박 원장은 “‘조선 태조가 강화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태조실록’의 기록에 따라 그동안 강화도에서 만들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선원사는 1245년에 창건됐는데 이때는 이미 팔만대장경 판각이 90% 이상 완료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즉 강화 선원사는 팔만대장경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는 “그동안 팔만대장경 제작을 위해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남해에 ‘분사(分司) 대장도감’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측해 왔으나 대장도감 판본과 분사대장도감 판본을 조사해 본 결과 두 곳은 동일한 장소였고 그곳이 바로 남해였다. 남해에서 100% 판각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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