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전통 양고기요리 ‘허르헉’ 한입물고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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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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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에서의 하룻밤

해발 1200여 m에 자리 잡은 게르 캠핑장에서 때늦은 만찬이 펼쳐졌다.
해발 1200여 m에 자리 잡은 게르 캠핑장에서 때늦은 만찬이 펼쳐졌다.
“고추장!”

몽골의 ‘바가노르(작은 호수)’ 지역에 자리 잡은 게르 안에 간절한 한국말이 울려 퍼졌다. 게르 가운데 있는 붉은색 네모난 탁자에는 ‘허르헉’이 놓여 있었다. 몽골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보라는 말에 크게 한입 베어 물었지만, 좀처럼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더 드셔 보세요. 몽골에서는 명절이나 귀한 손님들이 오셨을 때 대접하는 귀한 음식이에요.”

통역을 해주던 어기 씨가 다시 한 번 허르헉을 권했다. 허르헉은 양고기를 큼지막하게 잘라 감자 당근 등 야채와 함께 양철통에 넣어 쪄낸 몽골의 전통 요리로, 돼지족발처럼 뼈에 살코기가 먹음직스럽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잘 익은 고기 위에 길게 붙어 있는 허연 지방이 여전히 혀끝에 남아있는 느끼한 맛을 되살아나게 했다. 콧속을 파고드는 익숙지 않은 노린내를 애써 참아내며 양고기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초토’라고 하는 돌을 밀폐된 통 밑바닥에 깔아요.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넣고, 다시 초토를 올려요. 또 그 위에 고기를 넣고, 야채는 제일 위에 올리죠. 그리고 1시간 30분 정도를 찌는 거예요.”

어기 씨가 허르헉 만드는 법을 설명해줬다. ‘초토’는 불에 빨갛게 달궈 넣는다고 한다. 이때 물은 한 방울도 넣지 않는다.

“진짜 느끼하네요.” 옆자리에 앉았던 이동현 씨(32)가 말했다. 뒤따라 나온 국에도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몽골 사람들이 “함께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는 친구 사이”라며 계속해서 건배를 외쳤다. 어느덧 게르 안 훈훈한 공기만큼 따뜻한 그들의 마음에 느끼함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졌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너나 할 것 없이 소주와 몽골에서 만든 보드카의 안주로 허르헉 한 점씩을 집어 들고 있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8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게르 캠핑장 ‘우구무르’에서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옷 입고 잤나?”

“아니요. 너무 더워서 중간에 다 벗었다가, 새벽에 다시 껴입은 거예요.”

씻지 않아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머리를 만지며 침대에서 일어나자 신낙균 씨(46)가 물어왔다.

“나도 다 벗고 자는데 새벽에 너무 추운 거야. 나무 땔감이 다 떨어졌더라고. 땔감을 찾으러 밖에까지 나갔었는데 없어서 공치고 들어왔지. 별 수 없이 잠바 다시 꺼내 입고 잤다.”

신 씨의 말에 그제야 게르 한가운데 놓여 있던 쇠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밤새 옷을 다 벗어던질 정도로 뜨겁게 게르 안을 달구었던 난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룻밤을 보낸 게르 안에는 나무로 만든 침대 5개가 둥근 게르 벽을 따라 둥글게 놓여 있었다. 말소리가 시끄러웠던지 ‘상석’에 누워 있던 박경수 씨(43)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쪽이나 남동쪽을 향하고 있는 게르의 상석은 문의 정반대편인 북쪽에 있다. 원나라 때 쓰인 ‘몽골비사’에는 약혼 잔치를 하러 간 칭기즈칸이 자칫 위험에 빠질 뻔한 것을 말치기들의 도움으로 벗어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말치기들은 게르의 뒤편에서 칭기즈칸에게 아뢴다. 그가 상석인 게르의 뒤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집 뒤에서 이야기를 해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르의 문을 열고 나오자 쏟아질 것 같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던 별들 대신 게르 캠핑장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뒤편으로는 이곳까지 달려오며 보지 못했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저 멀리 앞쪽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8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잠을 청했던 게르를 둘러싸고 14개의 게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잘 잤어요? 그런데 하룻밤 자는 데 얼마예요?” 아침 인사를 건네며 어기 씨에게 물었다.

“네. 한국 돈으로 4만 원 정도 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몽골 치고는 좀 비싼 듯하다’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이곳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칭기즈칸의 땅인 것을, 그 땅에서 몽골인의 생활방식을 체험해 본 것만으로도 족했다.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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