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칭기즈칸처럼…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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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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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을 달린 한국 오토바이 마니아들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의상 협찬=라푸마, 촬영장비 협조 캐논코리아 컨슈머이미징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의상 협찬=라푸마, 촬영장비 협조 캐논코리아 컨슈머이미징
오른손에 쥐여 준 1000투그리크(몽골 돈 1000투그리크는 약 1000원)가 팔랑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양 볼이 빨갛게 언 여자아이가 다시 오른손을 내밀어 사탕을 받아 들었다. 아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이방인이 건네준 돈은 버리고 사탕을 손에 움켜쥐었다.

“그래. 먹는 게 더 낫다!”

푸른빛을 잃어버린 초원 위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모습에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가져다주는 낯섦은 조용히 사라졌다. 게르(몽골 전통 가옥) 안으로 들어갔던 군복 차림의 남자는 새하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가지고 나왔다. 마유주(馬乳酒·아이락)였다.

○ 스쳐 지나가는 정(情)

30분을 달리다 휴식을 위해 잠깐 멈춰 섰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지 3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 가운데 게르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곳이었다.

물이 귀하다는 말에 한국에서 챙겨 간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새하얀 물티슈 위로 누런 흙먼지가 잔뜩 묻어났다. 물티슈를 곱게 접어 다시 얼굴을 닦았다. 헬멧을 건네는 오토바이 대여점 직원에게 호기롭게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이 후회됐다. 코를 풀자 눈곱만 한 흙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체의 신비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많은 흙 알갱이들이 가득 차 있어도 사람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초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7대의 오토바이와 버기카(모래나 고르지 못한 땅에서 달릴 수 있게 만든 4륜 구동 자동차)가 신기했던지 게르 안에 머물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그 속에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여자아이도 섞여 있었다. 쪼그려 앉는 아이의 바지 사이로 살짝 살짝 엉덩이가 보였다.

“아이 바지 뒤쪽이 찢어진 거예요, 아니면 원래 터져 있는 거예요?”

“원래 터져 있는 거예요.”

통역을 담당하는 어기 씨(23·여)가 대답했다. 쉽게 볼일을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 아이가 일어서자 조금씩 보이던 엉덩이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마유주 한 잔씩 하시래요.”

“캬.”

돌아가며 마유주를 맛보는 이방인들에게서 비슷한 감탄사가 연이어 계속됐다.

“막걸리랑 비슷하면서도 쉰내가 좀 나는데….”

“상한 우유 맛 같기도 하고, 식초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낯선 이방인들의 마유주 맛 품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시고 나니까 속이 좀 편해져요. 한 잔씩 해 봐요. 여기까지 와서 이건 먹어 보고 가야지요.”

김대욱 씨(40)가 머뭇거리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1시간 전 가졌던 휴식 시간에 혼자 언덕 너머로 사라져 몽골 초원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왔다.

“소주를 넣어둔 가방이 어디 있어요?”

뒤따라오던 자동차 트렁크에서 소주를 찾아온 그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소주 한 병을 그들에게 건넸다. “한국의 술”이라는 통역의 설명에 소주병을 받아든 몽골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뒤이어 소주병을 들고 몽골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사진 촬영이 계속됐다.

“여전히 몽골 인구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렇게 초원의 게르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겨울에는 말똥이나 소똥을 연료로 쓰면서 유목민의 삶을 이어가는 거죠.”

어기 씨가 말했다. 한국산 중고차들과 버스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울란바토르에서는 볼 수 없는 삶의 모습이 몽골이라는 이름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속에 흐르는 따뜻한 정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달렸다.

○ 아무나 탈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시속 90km의 속도로 다가왔다. 앞서 달려가던 오토바이는 이미 언덕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진 250cc 오토바이는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아웃백 몽골리아’(www.outback-mongolia.com)에서 하루에 150달러씩을 주고 빌렸다. 출발에 앞서 두 장의 종이에 사인도 했다. 오토바이 파손 시 발생하는 수리비용은 이후에 따로 청구한다는 내용이 한 장, 계약자가 ‘위험한 활동’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웃백 몽골리아 측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또 한 장이었다. 한글로 적혀 있었지만 영어 문장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듯해 무슨 뜻인지 한 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고랑이 있어. 바퀴 크기를 고려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지. 그리고 넘을 수 있겠다 싶으면 브레이크를 당겼다가 놓으면서 뛰어넘는 거야.”

잠시 쉬는 시간에 전병준 씨(40)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술도 먹고 가나봐. 중간 중간 술병이 떨어져 있어서 밟고 지나가면 펑펑 터져. 피할 게 많네.”

또 중간에 술병이 떨어져 있었던 것일까. 그가 탄 오토바이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기회를 봐 한 번쯤 오토바이를 타 보겠다는 말을 건넬 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 내가 가는 곳이 길이고, 내가 서는 곳이 목적지다 ▼

가끔씩 멈춰서 지나가던 몽골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풀과 언덕, 하늘밖에 없는 곳에서도 그들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길을 알려줬다. “산 위에 번호를 적어놨다”는 바트뭉흐 씨(40)의 농담을 뒤로하고 또다시 바람과 함께 달렸다.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가끔씩 멈춰서 지나가던 몽골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풀과 언덕, 하늘밖에 없는 곳에서도 그들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길을 알려줬다. “산 위에 번호를 적어놨다”는 바트뭉흐 씨(40)의 농담을 뒤로하고 또다시 바람과 함께 달렸다.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또다시 찾아온 짧은 휴식 시간, 오토바이 위에 놓인 헬멧을 만지작거렸다.

“140km씩 달리면서 질주본능을 제대로 즐기려면 오프로드 경력이 있는 분들이 타셔야 돼요. 오토바이를 오래 타셨다고 하더라도, 온로드(포장도로)에서만 타신 분들은 쉽지 않아요.”

일행들이 ‘소대장’으로 부르는 박경수 씨(43)가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옆에 있던 장순태 씨(31)도 웃으며 덧붙였다.

“저도 오프로드 탄 지 이제 석 달 정도 됐는데, 아직 배울 게 많아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아 겁이 나서 그런지 자꾸만 뒤로 처지게 되네요.”

이번 여행에 나선 7명 모두 헬멧. 장갑, 신발 등 평소 자신의 오토바이 복장을 챙겨 가져왔다. 그러나 장 씨는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오토바이 대여점에서 빌린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에 입고 탄 고어텍스 재킷을 껴입어 새벽과 밤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기자는 멋쩍게 웃으며 조용히 헬멧을 내려놓았다.

“몽골에 와 오토바이를 타시는 분이 몇 명이나 되나요?”

아쉬움을 달래며 버기카를 운전하는 작트수렝 씨(36)에게 물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일행을 따르는 아웃백 몽골리아 직원 2명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1년에 100명 정도가 우리 회사를 찾아와요. 울란바토르에 다른 오토바이 대여점이 두세 개 더 있는데, 그쪽에는 얼마나 오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사람들이 제일 많이 와요.”

옆자리에 앉자마자 “일본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일본 사람이 많이 오다 보니 간단한 일본말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회사에 오토바이가 총 30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힘이 부족해서 조금 아쉬워. 450cc를 타면 더 박진감 있을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전 씨가 한국에 두고 온 ‘애마’를 그리워하며 말을 건넸다.

○ 바람 소리가 들린다

다시 버기카의 시동을 켰다.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출발과 함께 엔진 소리가 사그라졌다. 오직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온몸에 새겨놓았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드넓은 초원에 오직 나와 바람만이 존재했다.

‘이 바람과 함께 이대로 날아다니며 온 세상을 떠돌고 싶다.’

길 자체가 없는 그곳. 지금까지 걸어왔던 잘 닦여 있는, 항상 어딘가를 향해 있던 아스팔트길 위의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그저 이 길 위에서 바람과 함께 목적지 없이 흩날리고 싶어졌다.

“한국보다 더 오래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잖아요.”

“길이 없는 곳을 달린다는, 오토바이의 원래 목적에 가장 충실한 곳에서 달려 보고 싶었어요.”

이런 저런 이유들로 몽골을 찾은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타고 가다 더우면 옷을 하나씩 던져요. 그럼 우리들이 주워서 따라갈게요.(웃음)”

오토바이 행렬 제일 앞에서 달리던 아웃백 몽골리아 직원 한 명이 농담을 건넸다.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일행 중 몇 명이 두껍게 챙겨 입었던 몇 겹의 오토바이용 점퍼를 벗어 다시 짐 가방에 넣고 있었다.

“가슴팍 젖은 거 좀 봐요. 오토바이 타고 가면 오히려 더워요.”

김 씨가 말했다. 맞바람에 얼얼해진 두 볼 때문인지 그가 흘리는 땀이 낯설기만 했다.

“옆에서 보면 가만히 앉아서 가는 것 같지요? 아니에요. 온몸에 힘을 주고 타는 거예요. ‘니그립’이라고 하는데 일단 다리를 모아서 오토바이를 잡고, 균형을 잡기 위해 계속 자세도 바꾸잖아요.”

배 위에 붙여 놓았던 핫팩도 떼서 건넸다. 박 씨가 초콜릿을 손에 쥐여 주었다.

“오프로드 타면 체력 소모가 심해서 초콜릿 같은 것들을 싸들고 다녀요. 하루에 1000km씩 타면 필수지요.”

“저 정도 언덕이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평지만 달리니까 심심해요. 한국에서는 더 거친 산에서도 타 봤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언덕도 좀 넘어가요.”

누군가가 아웃백 몽골리아 직원 한 명에게 부탁을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가리켰던 그 언덕을 채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몽골 직원들이 뒤따르던 차에서 장비를 꺼내 잽싸게 타이어를 갈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250cc로는 무리일 것 같아요.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이 언덕은 그냥 내려가죠.”

‘소대장’의 정리에 동호회원들은 다시 핸들을 돌렸다.

붉게 물들었던 지평선 아래로 해가 고개를 숙이며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초원이 끝나며 작은 마을 하나가 일행을 맞았다. 기름을 채우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옆으로 작은 돌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버(돌서낭)’예요. 몽골 사람들은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때면 여행길을 보호해 달라는 뜻을 담아 항상 이곳에 들러요.”

발 빠른 누군가가 벌써 어기 씨에게 물어보았나 보다. 그녀의 대답이 귓속에 콕 박혔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한 바퀴 돌고 돌을 세 개 던지세요.”

그녀의 말대로 이수호 씨(40)가 한 바퀴 돌더니 돌을 주워 던졌다. 그리고 두 손을 곱게 모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도 몽골 사람들처럼 한국으로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것일까.

하루 종일 달렸지만 목적지인 게르 캠프장까지는 아직도 20km가 남았다고 했다. 다시 어둠 속을 달렸다.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머리 위를 계속해서 따라왔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2∼3일 오토바이 동호회 ‘빌리클럽’(cafe.daum.net/BMWBikes) 회원 7명과 함께 몽골 초원을 달리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시작해 264km 떨어진 게르 캠핑장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끝이 났습니다. 기자는 4륜 구동 버기카를 타고 그들과 함께 달렸습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우종군 씨께 감사드립니다.

울란바토르=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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