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이 시대 아버지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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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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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내·자식에게 말 걸면 노년이 따뜻해져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그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동아일보 DB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그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동아일보 DB
엄마와 자식들이 참외를 깎아 먹으며 ‘나는 가수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황급히 책상 앞으로 가고 엄마는 참외를 치운다. 아버지가 귀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족의 일상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모습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고조되는 사람’과 ‘그 사람이 나가면 분위기가 고조되는 사람.’ 한국 사회의 중년(40∼50대) 아버지는 불행히도 후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맞벌이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을 통해 가계를 부양하는 몫은 아버지에게 달려 있다. 많은 아버지는 그런 사회적 역할을 이유로, 혹은 거기에 안주해 가족 내에서 외톨이가 되어 간다.

문제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진다는 데서 생긴다. 예전엔 남성이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난 뒤 10년 안팎에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보다 빨리 은퇴하고, 그 뒤 최소 20년은 더 살아야 하는 시대다. 노후의 삶의 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후의 삶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연구자들이 지목하는 것은 노후자금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즉 사람이며 그 핵심은 가족이다.

중년 남성이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를 연구해온 한경혜 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전공)는 “성공적인 노화는 가까운 사람, 즉 가족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부터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노후의 사회적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 단적으로 말하면 아버지 역할을 잘해야 노년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은 보통 여성에 비해 관계 맺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글머리의 예처럼 아버지들은 가족의 일상에서 분리되는 삶을 사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족과의 관계를 맺을 때도 여성에게 의존한다. 은퇴를 하고 나면 기존에 일을 중심으로 가졌던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해 허물어지고 만다. 직장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연계수준도 높지 않다.

노년기 남성에 대한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은퇴 후 남성은 ‘자기를 돌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보는 경향도 있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더욱 가족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가족 의존성이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한 교수는 장성한 자식의 가족과 노부모 간의 상호작용 및 지원에 대한 조사를 했다. 슬프게도 부모가 돈이 많을수록 서로 접촉하는 비율과 지원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조사 결과가 있다. 노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거나 할머니만 살아 있을 때는 상호 접촉 및 지원 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만 살아 있는 경우 이 비율이 대폭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남성(남편 또는 아버지)이 없는, 여성(엄마) 위주의 일상에 익숙하다. 가계부양자로서의 역할이 끝나는 순간 그동안 가족과의 연계가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남성은 많은 경우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다.

결국 중년의 아버지가 지금처럼 가족 구성원 간 긴밀하고 일상적인 소통을 소홀히 하면 할수록 노년이 쓸쓸하거나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한 교수는 “아버지들이 노년기에 가족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인, 자식과 일상생활에서부터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족과 구체적인 일상의 기억을 많이 만들어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여행이나 놀이 등의 기회를 많이 만들고, 일방적 지시적 평가적인 특징을 갖는 남성적 커뮤니케이션 화법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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