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9단, 후지쓰배 최연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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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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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입문→17세 입신→18세 ‘지존’

차세대 유망주 박정환 9단이 마침내 세계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후지쓰배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한 박 9단이 14일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이버 오로 제공
차세대 유망주 박정환 9단이 마침내 세계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후지쓰배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한 박 9단이 14일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이버 오로 제공
‘한국 바둑의 미래권력’ ‘포스트 이세돌’로 불리는 10대 기사 박정환 9단(18)이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박 9단은 14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 간사이총본부에서 벌어진 제24회 후지쓰배 결승전 단판승부에서 중국의 추쥔 8단을 만나 22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1500만 엔(약 2억 원).

그는 현재 만 18세 7개월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과 박영훈 9단이 각각 2002년과 2004년 19세에 우승한 적이 있다. 다만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 타이틀 기록은 이창호가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할 때 세운 16세.

박 9단은 대국 뒤 “우승은 생각도 못했다. 나보다 잘 두는 기사가 많아 열심히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초반 신수 싸움에서 좋지 않았는데 이후 추쥔 8단이 무리하게 둬 편한 바둑이 됐다”고 덧붙였다.

후지쓰배는 이번까지 우승자 16명 중 10명이 세계대회 첫 우승일 만큼 세계바둑계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박 9단도 세계 정상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는 그가 바야흐로 꽃을 피울 것인가.

박정환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기대주. 6세에 바둑을 배우면서부터 기재를 보여 초등학교 1학년 때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실력을 키우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13세(2006년)에 입단해 2009년 십단전과 천원전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국내대회에서 5회 우승했다. 또 지난해에는 광저우 아시아경기 바둑 남자단체전과 혼성페어 부문에서 2관왕에 올라 9단으로 특별 승단했다. 이때 나이가 17세 11개월, 국내 최연소 9단 승단 기록이다. 박 9단은 바둑의 명문 충암중을 거쳐 충암고(3년)에 재학하고 있다.

국내 성적도 좋아 랭킹 2, 3위를 오갔으나 결정적인 필살기가 부족해 미완의 대기(大器)로만 불렸다. 세계대회에서는 비씨카드배에서 4강에 오른 게 최고성적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입단 이후 처음으로 국내 대회에서 7연패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그게 약이 됐을까. 7월부터 성적이 좋아졌다. 마침내 후지쓰배에서 그가 보여준 바둑내용이 좀 더 단련된 모습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대회 8강전에서 LG배 우승자인 중국 조선족 박문요 9단이나 4강전에서 일본 이야마 유타 9단을 누른 것에서 과감한 배짱과 함께 냉정한 형세 판단 능력을 보여줬다는 것.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포석 수읽기 형세판단 계산 대담성 아이디어 등 바둑의 모든 분야에서 강해야만 한다. 이제 박 9단이 세계대회 1승이라는 문턱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경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세돌 9단이 세계 1위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라이벌로 천야오예 9단과 이야마 9단을 꼽았다.

그의 스타일은 전투형. 그는 “계산보다는 수읽기에 자신이 있어 전투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같은 전투형이라도 최철한 9단의 두터움 쪽보다는 이세돌 9단의 실리형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김승준 9단은 “세계대회에서 이세돌 9단의 뒤를 받쳐줄 기사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젠 박정환 9단이 그만큼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 黑 박정환, 중앙 두터움 쌓아 우세 굳혀 ▼

14일 박정환 9단과 추쥔 8단의 후지쓰배 결승전은 세계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두 신예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중국의 구리 9단, 쿵제 9단이 일찌감치 탈락한 바 있다.

특히 한국 팬들은 추쥔이 8강전에서 이세돌을 누르고 올라온 터여서 내심 설욕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에 앞서 13일 치러진 4강전에서 박정환 9단은 최철한 9단을 이기고 올라온 이야마 유타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둬 한일전 축구에서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셈이 됐다.

이날 대국초반 백을 든 추쥔은 사전 연구가 있었던 듯 좌상귀에서 신형 포석을 들고 나와 약간 득을 봤다. 그러나 중반 전투에서 실리를 탐하는 수, 백 86을 두는 바람에 대세에서 뒤지게 됐다. 이 수는 패착으로 지목됐다. 흑은 이 과정에서 중앙에서 두터움을 쌓아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이후 박 9단은 백대마를 공격하다가 손해를 보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었다. 막판 비세를 느낀 추쥔이 중앙 흑대마를 공격하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되레 자신의 백대마가 두 눈을 내기 어렵게 되자 돌을 던졌다.

이로써 한국은 1988년 창설된 최고(最古)의 세계대회로 올해로 24회를 맞는 동안 이번까지 15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11∼20회는 10연패했다. 일본은 6회, 중국은 3회 우승. 한국기사로는 유창혁 당시 6단이 1993년(6회) 처음으로 우승한 이래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박영훈 9단, 박정상 9단, 강동윤 9단이 뒤를 이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제 24회 후지쓰배 결승전 ○ 추쥔 8단 ● 박정환 9단
제 24회 후지쓰배 결승전 ○ 추쥔 8단 ● 박정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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