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63>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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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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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박을 좋아한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호박요리가 많다. 호박으로 만드는 음식도 다양해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늙은 호박은 늙은 호박대로 음식을 만드는데 호박볶음, 호박전, 호박조림, 호박찌개, 호박나물, 호박죽, 호박고지, 호박떡, 호박엿 등 언뜻 생각나는 것만도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호박을 직접 먹는 것 외에도 된장찌개에 호박줄기를 넣고 끓이면 맛이 더 산뜻하고 호박잎을 쪄서 싸 먹는 호박쌈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별미다.

이렇듯 한국인 대부분이 즐겨 먹는 호박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호박을 먹은 역사를 살펴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많이 발견한다.

호박은 처음에 양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채소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던 채소다. 평민도 먹기는 했지만 즐겨 먹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절간에서 ‘중이나 먹는 채소’라고 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호박의 별명은 승려들이 먹는 채소라는 뜻의 승소(僧蔬)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19세기 중반에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절에서 승려들이 먹거나 평민이 먹었는데 이후에는 점점 호박 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먹는 채소가 됐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산해진미와도 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까지 했으니 호박의 위상이 확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규경보다 약 100년을 앞서 살았던 실학자 이익도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주로 절에서 승려들이 재배하거나 농부들이 텃밭에 심었는데 점차 재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채소 중에 호과(胡瓜)라는 것이 있는데 푸른빛에 생긴 모양은 둥글며 익으면 색이 누렇게 바뀐다. 큰 것은 길이가 한 자쯤 되는데 잎은 박처럼 생겼고 꽃은 누런 데다 맛은 약간 달콤하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농가와 절에서 주로 심는데 열매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대부도 심는 사람이 있다.”

또 이익은 “남과라는 호박이 전해진 지도 100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호남지방에는 미치지 못하였다”는 기록도 남겼다. 1763년에 사망한 이익의 생애로 계산해 보면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고르게 호박을 재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가난한 농부나 절간의 승려 외에는 별로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재배도 하지 않던 호박이 19세기 중엽, 그러니까 헌종과 철종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채소가 된 것이다.

원산지가 중남미인 호박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한자로는 남과(南瓜)인데 우리말로는 호박(胡朴)이라고 부른다면서 고추와 함께 선조 때인 임진왜란 이후에 전해졌다고 했다. 남만(南蠻)에서 자라는 채소인데 중국과 왜국을 통해 세 종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고추는 보이지 않지만 호박에 관한 기록은 있다고 했으니 중국에는 진작 호박이 전해졌던 모양이다.

본초강목에는 호박이 약재로 적혀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데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식물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더위로 입맛을 잃기 쉬운 요즘 어울리는 식품이 아닐까 싶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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