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성균관대 교수, 조선시대 표류기록 묶은 ‘해외문견록’ 발굴 소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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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日은 자유로이 드나드는데…”

《조선시대 표류사건 9건을 다룬 ‘해외문견록(海外聞見錄)’이 발굴됐다. 김용태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조선에 표류해온 외국인과 외지로 표류했다가 돌아온 표류민의 이야기를 모은 ‘해외문견록’을 발굴해 최근 열린 한문학회 정기학술회의에서 “표해록의 전통에서 본 ‘해외문견록’의 위상과 가치”라는 주제로 발표했다.‘해외문견록’은 조선 중기 문신 송정규(宋廷奎·1656∼?)가 제주목사로 내려가 있으면서 제주사람들의 증언과 자신의 취재 내용, 제주관아 기록 등을 토대로 1706년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1611∼1706년 표류사건 9건과 15세기 최부의 ‘표해록’ 요약 1건, 제주의 사건과 인물 6건 등 총 16건의 기록으로 구성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복사본을 보관 중이며 원본은 일본 덴리(天理)대에 소장돼 있다. 지금까지는 그 내용이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고, 저자도 누구인지 몰랐다.

김 교수는 “여타 표류기록들이 단순한 이국 취향이나 사건의 기록을 위해 작성된 것에 비해 ‘해외문견록’은 외부의 사회·경제제도, 선박제도, 무기제도 등 외지의 문물을 배우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작성된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말했다.

송정규는 타국의 제도와 관습 가운데 조선이 배울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항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1652년 제주에 표착한 중국 쑤저우(蘇州) 상인이 말한 내용을 탐문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내륙의 산시(山西) 산시(陝西) 산둥(山東) 성 사람들은 각각 약재나 대추 모직물 같은 토산품을 쑤저우 시장에 팔아 비단과 은을 구해 자오즈(交趾)에 가서 팔고는 후추 향료 소가죽 사탕수수 등을 사서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가서 인삼 동철 해삼 족제비 담배 등 물품과 무역하여 다시 쑤저우에 가서 팝니다. 쑤저우에서 일본으로 곧바로 가는 자들은 대개 비단 견직물 등으로 밑천을 삼습니다.”

송정규는 이에 대해 “중국 쑤저우와 일본 나가사키가 동서의 도회지로서 천하의 물산들이 두 곳으로 몰려드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다른 기록에도 이 표류 사건 자체는 언급되지만 교역에 관해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없다.

송정규는 1706년 제주에 표착한 산둥 사람에게 그곳의 세금징수 제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김 교수는 “빈부를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군역과 부역을 부과하는 제도를 소개한 것은 조선이 시행하지 못한 제도이지만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멜의 표류에 대해서는 “무릇 서양과 일본은 하늘 끝으로 떨어져 있어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곳이건만 이 무리들은 이웃집 가듯이 거리낌이 없어…천지에 이러한 습속이 있다니, 아 대단하다 할 것이다”라고 경탄하며 조선의 배외적인 태도를 성찰하고 있다.

외국의 기술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중국 배를 자세히 묘사하고 훗날 관련자들이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함께 밝혀뒀다.

“중국 배는 머리는 그 아래가 뾰쪽하고 꼬리는 넓게 올라가 있으며 가슴은 넓고 등은 솟아 있어 그 가운데가 좁다. 그 건조하는 방식은 무릇 나무가 연결되는 곳에는 모두 쇠못을 쓰는데 물고기 기름을 발라 안팎에서 고정을 하였다…제주 뱃사공 이덕인이 베트남에 표착했다가 돌아와서 저장(浙江) 푸젠(福建)의 배의 제도를 잘 알았다…널리 물어 여기에 기록해 놓으니 앞으로 일을 맡은 사람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해외문견록’은 경세(經世)적인 목적으로 서술됐다는 점에서 후대에 본격화될 실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조선시대에는 1000건이 넘는 표류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표류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별도의 ‘해양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는데 이를 밝힐 수 있는 추가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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