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사자상-병풍-새장 속에 샤넬의 영감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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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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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의 파리아파트 국내 언론 첫 르포

가브리엘 코코 샤넬 여사가 1971년 세상을 뜬 후에도 샤넬의 로고가 있는 옷, 가방, 화장품에는 여전히 샤넬 여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프랑스 파리 캉봉 가 31번지 샤넬 본사 3층에 있는 샤넬 여사의 아파트는 샤넬의 심장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사진은 샤넬 여사의 집무실. 샤넬 제공
가브리엘 코코 샤넬 여사가 1971년 세상을 뜬 후에도 샤넬의 로고가 있는 옷, 가방, 화장품에는 여전히 샤넬 여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프랑스 파리 캉봉 가 31번지 샤넬 본사 3층에 있는 샤넬 여사의 아파트는 샤넬의 심장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사진은 샤넬 여사의 집무실. 샤넬 제공
오랜 칠기 과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중국풍 병풍은 샤넬 여사가 중시하는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 샤넬 여사가 생전 불멸과 행운을 상징하는 봉황이 그려진 중국풍 병풍을 바라보는 모습. 샤넬 제공
오랜 칠기 과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중국풍 병풍은 샤넬 여사가 중시하는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 샤넬 여사가 생전 불멸과 행운을 상징하는 봉황이 그려진 중국풍 병풍을 바라보는 모습. 샤넬 제공
고풍스러운 건물이 줄지어 선 프랑스 파리 캉봉 가 31번지. 이곳 4층짜리 건물 3층에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 여사가 1971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머무르던 아파트가 있다.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다. 20세기의 샤넬과 21세기의 샤넬을 이어주는 교감의 장소다. 17일 샤넬 여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샤넬 아파트를 찾았다. 샤넬 아파트가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물로 가득한 4개의 방

같은 건물 1층 매장을 지나 2, 3층을 이어주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부채처럼 펼쳐진 거울이 벽면을 둘러싼 나선형 계단은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샤넬 마드무아젤 백을 론칭하면서 선보였던 화보를 연상시킨다. 길을 안내하던 샤넬 본사 관계자가 ‘자, 이제 20세기 샤넬로 들어간다’며 거울로 된 벽을 밀자 중국의 한 궁전에 들어선 듯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매혹적인 중국 병풍들이었다. 이 관계자는 “20세기 초 파리 상류사회에서는 중국 병풍을 수집하는 것이 부(富)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샤넬 여사는 병풍 한 폭을 완성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샤넬의 장인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며 모두 32개의 병풍을 사들였다고 한다. 입구에 놓은 병풍 가운데 행운과 불멸을 상징하는 봉황 그림이 눈에 띄었다.

화려하지만 고독이 스며있는 ‘스타일 퀸’의 흔적

병풍 앞에는 1937년 보그의 사진작가 홀스트 P 홀스트가 찍은 샤넬 여사 사진에 등장한 하얀 공단천의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원래 이 의자는 샤넬 여사가 세상을 뜬 후 아파트에서 사라졌지만 카를 라거펠트가 우연히 한 경매장에서 발견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입구 왼편의 유리 콘솔 위 벽면에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가 장식된 8각 거울이 있었다. 1921년 첫선을 보인 샤넬의 향수 N°5의 뚜껑과 닮았다.

아파트의 입구, 응접실, 사무실, 식당 등 4개의 공간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에는 침실이 없다. 샤넬 여사는 방돔 광장에 있는 리츠호텔에서 잠을 잤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이 아파트에서 보냈다. 리츠호텔에는 옷 3벌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샤넬 여사의 아파트 입구에 놓인 무어인 시동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8각 모양의 거울은 샤넬의 향수 No5 제품 뚜껑을 연상시킨다(왼쪽). 그가 쓰던 책상 위에는 잠시 자리를 비운 듯 그의 소지품이 그대로 놓여 있다(가운데).샤넬 여사가 지인들과 파티를 즐겼던 식당은 작은 공간을 커 보이도록 일부러 큰 가구를 배치한 감각이 돋보인다(오른쪽). 샤넬 제공
샤넬 여사의 아파트 입구에 놓인 무어인 시동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8각 모양의 거울은 샤넬의 향수 No5 제품 뚜껑을 연상시킨다(왼쪽). 그가 쓰던 책상 위에는 잠시 자리를 비운 듯 그의 소지품이 그대로 놓여 있다(가운데).샤넬 여사가 지인들과 파티를 즐겼던 식당은 작은 공간을 커 보이도록 일부러 큰 가구를 배치한 감각이 돋보인다(오른쪽). 샤넬 제공


가난 잊지 않았던 마드무아젤

입구를 지나 금빛 벽면이 인상적인 응접실로 들어섰다. 긴 스웨이드 소재 소파 위에 샤넬 핸드백과 똑같은 퀼팅 무늬 쿠션이 반가웠다. 소파 뒤쪽 벽은 고색 가죽으로 제본한 책들로 가득했다. 셰익스피어, 라신, 몰리에르, 루소, 볼테르 등 고전은 물론이고 성경도 있었다. 정작 샤넬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 맞은편에는 그의 연인 보이 카펠이 선물한 부처상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의 생일(8월 19일)이 속한 별자리를 의미하는 사자상이 있다. 김현경 샤넬코리아 대리는 “사자가 자신의 운명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사자상은 그의 패션쇼 오브제로 종종 등장한다.

응접실에는 낙타, 사슴, 개구리, 말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동물 오브제들이 짝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중국의 음양 이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평생 누구의 아내가 아닌 마드무아젤로 살아야 했던 샤넬 여사의 운명을 담은 듯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그린 16세기 일본의 실크 페인팅과 이집트 여인의 모습을 딴 가면, 흰 대리석의 비너스상은 화려했지만 여인으로서는 외로웠던 삶의 한 단면 같았다.

소파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벽난로 앞 밀 다발이 눈에 띄었다. 샤넬 여사는 어린 시절 배고픔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파리 변두리 지역에서 밀 다발을 가져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다고 한다. 1883년 프랑스 서부지방 소뮈르에서 태어난 샤넬은 12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아 언니와 함께 수녀원으로 갔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안경과 부채, 티 테이블 위 주황색 찻잔 세트. 샤넬 여사가 불과 몇 분 전에 잠시 자리를 뜬 것 같다. 티 테이블 옆 작은 새장은 2009년 겨울 컬렉션 때 광고 오브제로도 사용됐다.

스타일은 남는다

응접실과 맞닿은 사무실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유리 선반으로 된 콘솔, 그리고 샤넬 여사가 소장한 병풍 가운데 가장 화려한 병풍이 놓여 있었다. 가구 수는 적지만 샤넬을 상징하는 동백꽃(카멜리아)을 본뜬 샹들리에를 달아 공간의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한 솜씨가 돋보인다.

샤넬 여사는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당시 파리에서 이름을 날리던 젊은 예술가들과 자신의 아파트 사무실에서 예술과 인생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로미 슈나이더, 잔 모로 등 수많은 은막의 여배우들은 샤넬 여사의 옷을 입기 위해 이 아파트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맞은편에는 지인들과 다과를 즐기던 식당이 있다. 다른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지만 좁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거울 3개를 벽면에 걸어 작은 공간을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웅장한 크기의 월넛 색상 식탁을 놓은 것도 패션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믹스앤드매치(Mix and Match·섞어 입기) 솜씨를 보여준다.

식탁 위에는 재떨이 용도의 금색 조가비 껍데기와 날개 달린 사자상, 더블 C 로고가 그려진 검은색 테두리의 접시가 놓여 있다. 샤넬 본사 관계자는 “식탁 주위에는 8개의 베이지색 식탁의자가 있었지만 의자에 사람이 모두 앉은 적은 없었다”며 “샤넬 여사는 사람이 북적이는 것보다 2, 3명만이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71년 1월 10일 88세의 나이로 리츠에서 혼자 숨을 거둔 샤넬 여사. 중국풍 병풍과 사자상, 카멜리아처럼 그가 아꼈던 오브제들에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일을 정의하는 샤넬의 삶과 정신이 느껴졌다. 샤넬 본사 관계자는 “그의 아파트는 샤넬 세계의 심장부”라며 “지금도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라거펠트를 비롯해 많은 이가 이곳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한 구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패션은 사라질지라도 스타일은 남는다.”(코코 샤넬)

파리=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샤넬 자수공방 르사주 가보니 ▼

수작업으로 100년 넘게 제작한 샘플 6만개


‘명품의 힘은 공방(工房)에서 나온다.’

샤넬의 지금을 있게 한 힘은 바로 공방이다. 샤넬은 파리 시내에 공방 7개를 갖고 있다.그중 르사주는 프랑스 여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자수공방이다. 지금도 18세기 전통방식 그대로 프랑스 자수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샤넬 제공
샤넬의 지금을 있게 한 힘은 바로 공방이다. 샤넬은 파리 시내에 공방 7개를 갖고 있다.그중 르사주는 프랑스 여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자수공방이다. 지금도 18세기 전통방식 그대로 프랑스 자수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샤넬 제공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타 브랜드와의 비교를 거부하는 독창성을 자랑한다. 단순한 비법이 아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정교한 수작업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패션의 전통도, 혁신도 공방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답게 100여 년 역사의 공방이 70여 곳이나 있다. 그중 샤넬은 7개의 공방을 운영한다. ‘르사주(자수)’ ‘르마리에(꽃과 깃털 장식)’ ‘미셸(모자)’ ‘마사로(구두)’ ‘데뤼(단추와 벨트)’ 등등. 단추 한 개, 깃털 한 조각에서도 샤넬의 우아함이 묻어나는 것은 바로 이들 공방의 힘이다. 그중 프랑스 자수 명가(名家)로 불리는 르사주 공방을 17일 찾았다.

파리 시내 그랑주 바텔리에르 가에 위치한 르사주 공방. 100년도 더 된 회색빛 5층 건물 꼭대기층에 들어서자 벽마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상자 수백 개에 눈길이 갔다. 상자에는 각 샘플을 제작한 연도와 협업한 브랜드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상자 하나를 열었다. 1968년 여름 컬렉션 샘플들이 담겨 있었다. 비즈와 구슬로 화려하게 장식한 샘플에서부터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자수 샘플이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르사주 홍보담당자 메릴린 스미스 씨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만든 자수 샘플 6만 개가 공방 구석구석에 보관돼 있어 자수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거에서 미래를 찾고 싶은 디자이너들이 종종 이곳을 찾아 영감을 얻어간다.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를 비롯해 장폴 고티에,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크리스티앙 디오르, 지방시 등 세계적인 패션브랜드가 ‘단골’이다.

1858년 설립된 르사주는 150년 가까이 르사주가(家)에 의해 운영되다 2002년 샤넬에 인수됐다. 소유권은 샤넬이 갖고 있지만 여전히 르사주 창업주의 아들인 프랑수아 르사주 씨가 경영하고 있다. 처음 만들어질 때처럼 샤넬 외에 이브생로랑,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의 브랜드와 여전히 함께 작업한다.

제작 방식은 18세기 방식 그대로다. 디자이너가 옷에 어울리는 자수를 요청하면 자수 전문 디자이너가 기름종이에 스케치를 한다. 기름종이 위에 스케치가 끝나면 기름종이 아래 천을 깔고 재봉틀 바늘 같은 도구로 스케치 선을 따라 작은 구멍을 낸다. 그 구멍에 분필 가루를 뿌려 천 위에 도안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 도안에 따라 100% 수작업으로 자수를 새긴다.

르사주는 프랑스 전통 자수 제작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1992년 자수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공방의 대표 장인들이 강사로 나서 가르친다. 스미스 씨는 “현재 이 학교 재학생의 23%가 일본인일 정도로 프랑스 자수에 대한 아시아의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르사주를 이끌고 있는 프랑수아 르사주 씨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출근길에 자수학교에 들르는 일정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공방 하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떠오르지만 르사주의 장인은 패션디자인학교나 자수학교 출신 30, 40대 여성이다. 스미스 씨는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전투복에 부인이 문양을 새겨준 것이 프랑스 자수의 시작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 인력이 많다”고 설명했다.

파리=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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