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무한을 향한 유한한 인간의 사색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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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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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으로 가는 안내서/존 배로 지음·전대호 옮김/380쪽·1만8000원·해나무

고중숙 순천대 교수 화학교육과
고중숙 순천대 교수 화학교육과
‘무한.’ 이름만 들어도 어딘지 신비롭고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스며드는 관념이다. 그래서 실제로 옛날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도 불온하다고 매도되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피해갈 수 있을까?

간단한 예를 보자.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바라면서 이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교환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과 달리 수없이 다투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영원토록 살거나 아예 젊음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무한과 관련된다. 그러나 무한은 상상에서만 펼쳐질 뿐 인간의 현실은 유한에 갇힌 듯하다.

이처럼 인간은 본래적으로 좋든 싫든 무한을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아득한 고대로부터 수많은 선현이 골머리를 앓으며 그 본질을 파헤쳐 왔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는 이에 대해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졌을까? 설령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답이라도 얻었을까? 애석하게도 그 답은 모두 “아니요”이다. 게다가 그것도 단순히 부정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부정이다. 왜냐하면 무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수많은 모순과 역설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무한집합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우선 언뜻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직선’을 보자. 여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눈금을 매기고 순서대로 1, 2, 3…이라는 자연수를 대응시킨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면 이런 과정은 무한히 반복할 수 있으므로 직선의 각 점은 자연수라는 무한집합과 잘 대응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자연수는 “1 다음에 2, 2 다음에 3…”과 같이 ‘그 다음 수’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직선의 각 점들은 분명 크기 순으로 배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점에 대해 ‘그 다음 점’을 꼬집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수에는 1과 2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2는 1 다음의 수이지만, 직선의 경우에는 어떤 두 점 사이에도 무한히 많은 점이 존재하므로 어떤 점에 대해서도 ‘그 다음 점’이란 것을 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수직선의 점들은 자연수라는 무한집합보다 더 큰 무한집합이다. 이처럼 어떤 무한보다 더 큰 무한이 있다는 사실은 19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나아가 그는 이와 같은 ‘무한의 계단’이 무한히 이어진다는 사실도 밝혔다. 한마디로 “최대의 무한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흔히 궁극의 무한한 존재라고 여겨온 ‘신’의 존재는 어찌 될까?

위에서는 무한을 시간의 영원성과 수의 무한성에 비춰보며 진행했다. 하지만 ‘신의 존재’로 암시했듯 무한은 철학과 종교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난다. 나아가 현대에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혁신되고 이로부터 유래한 빅뱅이론에 의해 천문학의 새 지평이 열림에 따라 무한은 이제 추상적 논의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인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모든 자오선과 동일한 각도로 만나는 궤적인 항정선(航程線)을 표현한 에스허르의 목판화 구면나선(1958년). 자오선의 간격이 좁아지는 북극과 남극에서는 항정선이 무한히 감기는 나선으로 나타난다. 해나무 제공
모든 자오선과 동일한 각도로 만나는 궤적인 항정선(航程線)을 표현한 에스허르의 목판화 구면나선(1958년). 자오선의 간격이 좁아지는 북극과 남극에서는 항정선이 무한히 감기는 나선으로 나타난다. 해나무 제공
대표적으로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우주 공간은 유한인지 무한인지는 잘 모르지만 무한일 경우 똑바로 무한히 뻗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고무막처럼 휘어질 수 있음을 보였다. 나아가 그는 엄밀히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은 분할할 수 없는 일체임을 밝혀냈다.

따라서 시간도 마냥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둥글게 휘어져 순환 고리를 이룰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가 흐트러진다. 미래의 일이 과거를 거쳐 현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에 대한 이 서평이 먼저 쓰인 다음에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 책이 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고 우주는 단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명멸하고 있는 무궁한 변화의 공간일 뿐일까?

따라서 이 책은 ‘해답’이 아니라 이와 같은 무한의 다양한 면모를 둘러보는 ‘안내서’이다. 이를 쓴 존 배로는 학부에서는 수학을 전공했지만 박사학위는 천체물리학으로 받았다. 그는 이후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쓰면서 수학이나 물리학에 머물지 않고 역사와 종교와 철학까지 섭렵하며 탐구해 온 경력에 힘입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 저술가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다만 무한은 물론이고 이와 깊이 얽혀 있는 무의 관념을 완전히 다루려면 동양 철학에도 눈길을 돌려야 하는데, 서양인이어서 그런지 이런 내용들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자못 아쉽다.

인간은 분명 여러모로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눈이라는 창구를 통해 작은 뇌 속에 온 우주를 투영하면서 숙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무한은 인간적 사고의 원천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새삼 말하거니와, 만일 우리가 무한한 존재라면 굳이 무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위에서 보았듯 무한에 대한 해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실마리들마저 주어지지 않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며, 각자의 노력에 따라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유한하기에 무한에의 염원과 사색이 더욱 절실하다는 역설을 되뇌면서 이 책을 통해서도 그 사색의 여정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고중숙 순천대 교수 화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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