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남성의 몸으로 표현한 ‘블루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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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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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공연 앞둔 안무가 카롤린 칼송-무용수 테로 사리넨 씨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블루 레이디’에 출연한 테로 사리넨 씨.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블루 레이디’에 출연한 테로 사리넨 씨.
무용수는 붉은 드레스를 입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정경을 담은 푸른 조명 아래, 이제 갓 아들을 낳고 모성(母性)을 새로이 깨달은 무용수가 자신의 삶을 담아 춤을 춘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춤을 근육질의 남자가 춘다면?

6월 9,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블루 레이디’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블루 레이디는 1998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상,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안무가 카롤린 칼송 씨(68)의 대표작이자 솔로 작품이다. 1983년 초연 때부터 칼송 씨만이 춰온 작품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연한 지 약 15년 만인 2008년, 이 작품은 핀란드 출신 남자 무용수 테로 사리넨 씨(47)에 의해 부활했다.

칼송 씨는 “처음엔 블루 레이디를 재작업하자는 매니저의 아이디어에 반대했다”고 했다. 누가 추더라도 자신과 비교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칼송 씨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사리넨 씨였다.

여성 안무가 카롤린 칼송 씨(왼쪽)가 안무해 11년간 춤춰온 작품을 남성 무용수인
사리넨 씨의 춤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LG아트센터 제공
여성 안무가 카롤린 칼송 씨(왼쪽)가 안무해 11년간 춤춰온 작품을 남성 무용수인 사리넨 씨의 춤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LG아트센터 제공
“테로는 일본에서 가부키와 노를 공부한 적이 있죠. 가부키와 노에서는 남성 배우가 늘 여성의 역할을 대신 연기하니 그에게 이 작품을 맡기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성과 여성이니 서로 비교될 일도 없을 테고요.”

사리넨 씨는 처음 제안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을 추게 돼 영광이었다. 하지만 난해한 작품이어서 두렵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블루 레이디에서 무용수는 75분 동안 홀로 기타 선율에 맞춰 춤사위를 펼쳐야 한다.

두 사람은 1980년대부터 교류해왔다. 칼송 씨가 사리넨 씨를 위한 작품을 안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업은 난관에 자주 부닥쳤다. 칼송 씨는 “우리 둘은 움직임부터가 다르다. 내가 공기처럼 가볍고 상승 지향적인 움직임을 사용한다면 테로의 움직임은 ‘바닥 지향’적”이라고 말했다. 사리넨 씨는 “턴 동작 하나를 연습하는 데만 며칠씩 걸렸다”고 했다.

내밀한 감정을 담아 창작된 작품인 만큼 단순히 동작을 익히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칼송 씨는 “테로는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해요. 그가 전혀 모르는 진짜 어머니(real mother)를요. 스텝과 시퀀스 아래 깔린 시정(詩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활용하곤 했죠. 연습이 진행되며 블루 레이디는 점점 사리넨의 작품이 돼갔어요”라고 전했다.

약 두 달간의 작업 끝에 블루 레이디는 2008년 프랑스 리옹 페스티벌에서 초연됐다. 공연 말미 소용돌이치는 붉은 드레스, 푸른 조명에 정취를 더하는 베네치아식 블라인드 모두 그대로였다. 무대 뒤로는 칼송 씨의 예전 공연 영상이 함께 비춰졌다. 새 생명을 얻은 현대의 고전에 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리 둘은 몸부터 전혀 다르게 생겼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둘이 꽤 닮아 보인다고 얘기하곤 해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땅 위의 사람들이고, 똑같은 정수를 공유하고 있으니까요.”(칼송 씨) “카롤린은 이 작품을 재작업해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에서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블루 레이디는 한 여성 또는 한 남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관한 작품이 된 거죠.”(사리넨 씨)

세 차례 방한한 적 있는 칼송 씨는 “무용수 16명과 말 35마리가 나오는 작품을 안무하느라 이번엔 방한하지 못한다”며 “호기심 많은 한국 관객들과 곧 다시 만나고 싶다”고 인사를 전했다. 3만∼7만 원. 02-2005-0114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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