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 이어 ‘평양성’서도 거시기 역 이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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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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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많이 줄었지만, 민초들 애환 담기엔 딱”

2003년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역을 맡았던 이문식 씨는 새 영화 ‘평양성’에서 조금은 얌전해진 거시기’를 선보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03년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역을 맡았던 이문식 씨는 새 영화 ‘평양성’에서 조금은 얌전해진 거시기’를 선보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병역이 ‘공정’과 맞물려 시대의 화두가 된 세상에 군대를 두 번 간 사람이 있다. ‘다행’인지 아닌지 실제가 아닌 영화 속에서다. 설 연휴 직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영화 ‘평양성’의 ‘거시기’역을 맡은 배우 이문식 씨(44)을 만났다. 동그란 얼굴에 눈초리와 입꼬리가 만날 듯 환하게 웃는, 영화 속 ‘거시기’ 그대로였다. 이날 새벽까지 충남 부여군에서 드라마 ‘짝패’(7일 첫 방송) 촬영을 마치고 올라왔지만 그의 미소는 겹겹의 피로를 뚫고 나오는 듯 보였다.

8년 전 ‘황산벌’에서 백제 군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거시기는 ‘평양성’에서 신라 군사로 징집돼 돌아왔다. 이번 영화에서 고구려 여장부(갑순이)에게 장가도 가고 좋았겠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그는 “배우 생활 첫 베드신을 기대했는데 정작 베드신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눙쳤다.

―‘평양성’에서 타의로 ‘재입대’하면서 관객들의 동정을 자아냈습니다. 남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군대 두 번 가는’ 악몽을 대리 체험한 셈인데 실제 군대 경험은 어땠나요.

“말도 마세요. 엄청 굴렀어요. 스물다섯 살에 입대해 육군 28사단에서 친동생과 함께 근무했어요. 그런데 동생은 소위로, 저는 이등병으로 입대했죠. 고참들이 ‘네 동생한테 인사해야 한다’며 많이 ‘굴렸’습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다 입대한 그는 부대에서도 끼 많은 병사로 통했다. 장기자랑이 열리면 으레 단골로 호출당했다. “한번은 유격 훈련을 갔다가 동생 앞에서 우스운 춤을 추기도 했어요. 형으로서 어찌나 창피하던지….”

같은 인물이지만 ‘이번’ 거시기는 ‘저번’ 거시기보다 좀 얌전하다. ‘평양성’에서 걸쭉한 남도의 욕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실망할지 모른다. 사실은 ‘12세 관람가’에 맞추느라 욕이 전편보다 줄어든 것이다. ‘황산벌’에서와 같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상소리 육박전은 이번에 없다. 그의 입담도 조금은 밋밋해졌다. 전편의 남도 욕설이 ‘날것 그대로’였다면 이번엔 걸쭉함을 걷어내고 정겨움만 남겼다.

그는 “요즘 많이 나오는 잔인한 영화들을 생각하면 ‘평양성’은 착한 영화를 지향한 셈”이라고 했다. “욕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지만 민초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도구라고 이해해주세요. 지배 권력에 대해 변변한 방어수단조차 없는 민초들의 최후의 저항인 셈이죠.”

그의 코믹 연기는 종종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란 말을 듣곤 한다. 웃음의 원동력으로 그는 ‘긍정적인 삶’을 꼽았다.

“제가 가난한 집 11대 종손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하고, 애가 어떻게 생기는 줄도 모르는 범생이었죠.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이걸 놔버리니까 매사가 낙관적으로 보이더군요.”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서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을 코미디로 구성한다는 건 어땠습니까.

“거시기의 꿈은 평범한 꿈이죠. 대의보다는 한 인간의 삶이 중요합니다. 원래 백제 사람이었던 거시기가 전쟁에 끌려가서 남의 전쟁에 휘말린다는 상황 자체가 진짜 코미디잖아요.”

―‘평양성’에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신라와 고구려를 남한과 북한으로, 당(唐)을 미국으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먹구름이 낀 지금의 한반도 상황과 주변 정세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 정치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떤 명분으로도 이데올로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해석은 관객의 몫이죠.”

인터뷰 초반의 약간의 장난기를 빼면 그는 상당히 진지했다. 영화 속 거시기처럼 항상 웃는 얼굴의 그에게 즐겁게 사는 법을 물었을 때도 진지하기만 했다. 두 달 넘게 채식을 하고 있는데 몸도 마음도 맑아졌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사교육에서 한발 비켜나 대안학교에 다닌다. 얼굴이 알려졌지만 대중교통도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요즘 세상은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근데 좀 놔버리면 인생이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달마야 놀자’에서 스님 역을 맡으면서, 가진 걸 조금씩 포기하면 행복해진다는 걸 배웠죠.”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그의 말 속에는 좀처럼 빈틈이 드러나지 않았다. 허술해 보이는 이 배우의 모습이야말로 실은 빈틈없는 영리함으로 깎아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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