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빼어난 기교 은은한 울림 미더운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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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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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말러 2011 시리즈’ 중간 리뷰
해석 ★★★★ 연주 ★★★ 성악진 기량 ★★★★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말러 2011시리즈 첫 콘서트에서 소프라노 리사 밀네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말러 교향곡 4번 마지막 악장을 협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말러 2011시리즈 첫 콘서트에서 소프라노 리사 밀네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말러 교향곡 4번 마지막 악장을 협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립니다. 세상적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끄러움은 천국에선 들리지 않으니….’

실로!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른이 노래하는 ‘어린이의 천상의 삶’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2400명 청중에게 천국을 갈망하게 했다. 어린이가 바라보는 지상과 천상은 50분 가까운 시간 내내 어른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서울시향의 말러시리즈 5번째 공연이 열린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소프라노 리사 밀네는 깊디깊은 영적인 울림으로 ‘어린이의 천국’을 절절히 읊었다. 4악장 내내, 그리고 전곡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는 고개 들어 높은 곳을 응시했다. 그곳은 필시 천국이었으리라. 이른바 ‘뿔피리’ 교향곡의 갈무리는 어린이의 동심으로 돌아가 어른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2010년 서울시향이 점화한 말러 전곡 시리즈는 임헌정과 부천필하모닉이 2003년 개척한 말러 열풍을 7년 만에 되찾아왔다. 시작은 들떠 있었다. 지난해 8월 26일 2번 ‘부활’ 교향곡은 편성만큼이나 요란했다. 객석은 광적인 ‘말러리안’들로 찼고 속 깊은 음악애호가들은 박수의 세기에서도 밀렸다. 서울시향은 긴장했고 숨이 가팔랐다. 템포는 빠르고 소리는 떠있었다. 파이프오르간 부재의 국내 대표 콘서트홀은 ‘부활찬가’의 압도적 음량을 맥 빠지게 한 주범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흥분은 휠체어에 의지한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에 의해 가라앉았다. 10월 7일, 미완성 교향곡 10번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지휘자의 혼이 녹아 흘러 5악장 말미에는 속으로 울게 만들었다. 한 달 뒤 11월 3일 교향곡 1번 ‘거인’으로 다시 돌아온 정명훈은 경탄할 만한 ‘승리의 찬가’로 피날레까지 거침없이 진군했다. 그리고 12월 30일 세밑, 교향곡 3번은 3악장 ‘우편나팔’ 독주에서 단연 돋보였다. 번스타인, 노이만, 시노폴리의 지휘보다 느렸던 1악장(34분)은 올곧게 담금질한 지휘자의 노작이었다. 템포가 느려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교향곡 4번 연주에서도 구현되어 더욱 진득한 음악으로 회귀했다. 우연일까? 4년 전 고양아람누리에서 서울시향이 연주한 브람스 ‘독일 레퀴엠’의 잔상이 자꾸 떠올랐다.

중국 육조시대 문인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 ‘은(隱)’과 ‘수(秀)’에 대한 비교가 나온다. 서울시향의 말러는 기교적으로 겉으로 빼어난 ‘수’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불과 5년의 짧은 시간에 이룬 값진 성과다. 그러나 터지기 직전 빨간 속살을 숨기고 있는 석류의 모습인 ‘은’이야말로 진정한 열락의 세계다. 회를 거듭할수록 ‘은’에 근접해가는 서울시향이 그래서 미덥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i: 1만∼12만 원. 21일, 10월 20일, 11월 11일, 12월 9일, 12월 2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158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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