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시인 “500호 ‘현대시학’ 뿌듯하지만 매달 낼 때마다 피말린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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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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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째 주간 맡아온 정진규 시인

“오히려 제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나이 들면 감성이 둔화되기 쉬운데, 잡지를 만드는 일이 제게는 큰 탄력을 주었어요.”

20년 넘게 월간 ‘현대시학’ 주간을 맡은 시인 정진규 씨(72·사진). 사재를 털어가며 수월치 않게 잡지를 꾸렸지만 그는 “그것이 내 시작(詩作)의 에너지”라고 말했다.

현대시학이 2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 벤처중소기업센터에서 500호 기념식을 갖는다. 1969년 4월 창간해 지난해 11월 지령 500호를 돌파한 현대시학은 올해를 500호 기념의 해로 정하고 기념식을 시작으로 과월호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초대 주간인 전봉건 시인의 후임으로 1988년부터 잡지를 맡아온 정진규 씨는 평남 안주가 고향인 전봉건 선생의 시비를 짓고자 북쪽 가까운 곳에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면서 “많은 분의 성원으로 지금까지 (잡지를) 낼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 전문 문예지로 품위를 지켜온 현대시학이지만, 잡지를 낼 때마다 정 씨는 ‘피를 말려야’ 했다. 아내 변영림 씨가 산문집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에서 “그동안 현대시학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진저리를 내기도 했다”고 고백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 씨는 “막막하다 싶으면 느닷없이 후원회비가 들어와 길이 열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현대시학은 조정권 이하석 최정례 김언희 조말선 씨 등 200여 명의 시인을 시단에 배출했고 시인들의 귀중한 작품 발표 지면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 연재됐던 오규원 시인의 ‘시창작법’은 시학도들의 교과서로 꼽혔다. “현대시학에 시를 보낼 때는 (좋은 작품을) 고르게 된다는 얘기를 합디다.” ‘누구는 실어주고 누구는 안 실어주느냐’는 억측이 돌 때는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시단에 긴장감을 준다는 호평에 정 씨는 힘을 얻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대시학이 배출한 유명 필자로는 한양대 정민 교수가 꼽힌다. 그가 1994년 2월부터 2년 동안 현대시학에 실은 ‘옛 시인들의 한시 쓰기’가 시인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 연재물이 ‘한시미학산책’이라는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그는 스타 저자가 되었다.

“내가 한시에 관심이 많던 차에 사석에서 만난 정 교수와 얘기를 나누다 뜻이 통했어요. 단지 한시 풀이만이 아니라 한시와 현대시와의 접점을 찾아보자는 기획의도였지요.”

그렇게 널리 이름이 알려지게 된 정 교수가 지금까지도 현대시학에 후원금을 보내준다며 그는 웃었다.

문학이 무력해 보이는 이 시대에도 “시는 삶의 위엄을 감당한다”고 믿는다는 정 씨. 기념식을 앞두고 ‘지령 1000호’를 그려본다는 그는 “경제적 기반을 잘 다져놓은 뒤 후배에게 주간을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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