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다듬고… 지키고…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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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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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쥐 식빵 사건’으로 ‘블랙컨슈머’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말로 바꾸려면 어떤 말이 적당할까요.” 국립국어원이 1월 23일로 개원 20주년을 맞는다. 4일 개원 기념식 준비 등으로 바쁜 서울 강서구 방화동 국립국어원을 찾은 기자에게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팀장이 던진 질문이다. 그는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우리말로 다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3일 개원 20주년 맞는 국립국어원

①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표준어뿐만 아니라 문화·언어적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방언을 보존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방언을 활용한 지역 문화재 해설을 도입하는 등 방언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 국립국어원 주관으로 경북 경주시(왼쪽)와 제주 서귀포시에서 방언을 수집하고 있는 연구자들. 사진 제공 국립국어원②1999년에 간행 완료된 표제어 51만여 개를 수록한 표준국어대사전.③표준어와 문법 등 국어와 관련한 모든 질문에 응답해주는가나다전화(1599-9979).④문자나 음성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번역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 국어자료집 ‘21세기 세종계획’.
①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표준어뿐만 아니라 문화·언어적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방언을 보존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방언을 활용한 지역 문화재 해설을 도입하는 등 방언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 국립국어원 주관으로 경북 경주시(왼쪽)와 제주 서귀포시에서 방언을 수집하고 있는 연구자들. 사진 제공 국립국어원②1999년에 간행 완료된 표제어 51만여 개를 수록한 표준국어대사전.③표준어와 문법 등 국어와 관련한 모든 질문에 응답해주는가나다전화(1599-9979).④문자나 음성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번역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 국어자료집 ‘21세기 세종계획’.
1991년 개원 이후 국립국어원은 국어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는 표준어 확립에 무게를 두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외국어로부터 한국어를 지키는 일과 문화적 다양성 차원에서 방언을 보존하는 일 등으로 바쁘다. 국어원이 20년간 추진한 사업에는 사회 문화적 환경 변화에 따른 국어정책의 변천이 녹아 있다.

국립국어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표준어의 정립. 1988년에 고시된 현행 맞춤법에 따른 표준국어대사전을 1999년에 간행 완료했다. 51만여 단어가 수록된 표준국어대사전을 온라인으로 무료 제공해 표준어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러나 늘어나는 어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는 새로운 온라인 사전을 준비하고 있다. 100만 단어 수록을 목표로 2012년 말 완료할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에는 표준어는 물론이고 일상어와 방언까지 수록한다.

최근에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일이 활발해졌다. 세계화로 인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문물이 늘어난 사회현상의 반영이다. 2004년부터 2주에 한 번씩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을 통해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자주 쓰이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순화하고 있다. 스키니 진은 ‘맵시 청바지’로, ‘와이파이’는 ‘근거리무선망’으로 다듬었다.

관청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는 일도 2009년 5월 시작했다. 법제처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나 국세청의 알기 쉬운 세무용어, 전국의 각 도청에서 추진하는 행정용어 순화 작업은 대부분 국립국어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0년에만 130건의 공공기관 감수 요청에 응해 5474단어를 순화했다.


2004년부터는 전국을 9개 권역으로 나눠 매년 6개 도시씩 각 지역 방언을 수집하고 있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은 “1990년대에는 의사소통의 효율화를 위해 표준어를 강조하는 정책이 시행됐지만, 이제는 문화적 다양성 차원에서 방언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가나다 전화(1599-9979)는 표준어와 문법 등 국어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응답해 주는 서비스다. 이 밖에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검색이나 국어와 외국어 간 번역을 위한 말뭉치 자료 수집 사업(21세기 세종계획)도 끝냈고,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어 강사 양성을 위한 제도 마련과 강사 양성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은 “국립국어원은 문화부 등 관련 기관의 정책 수행에 필요한 연구만 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어 연구와 관련된 연구 계획을 총괄하고 정책도 독자적으로 수립하는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말은 이제 세계인들이 배우려고 하는 ‘한국어’로서의 위상을 가진 만큼 다른 언어와 비교한 한국어의 특성을 가르치는 초중고교생을 위한 교과과정도 필요하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교육철학)는 국립국어원을 포함한 국어학계 전반의 분발을 촉구했다. 최 교수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말은 외국에서 빌려온 개념인 ‘동사’나 ‘형용사’를 그대로 쓰는 등 우리말로 된 문법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 예로 ‘가르치다’라는 말의 어원까지 세세하게 분석 연구해 우리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르치다’는 ‘가르다(구분하다)’와 ‘치다(양육하다)’는 의미가 결합된 말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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