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헐벗고 가진게 없는 밑바닥존재…저 높은곳 오르는 모습 보여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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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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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째 창작극 ‘길바닥에 나앉다’ 올린 극작가 김지훈

지난해 공연한 ‘방바닥 긁는 남자들’의 속편 ‘길바닥에 나앉다’ 포스터 앞에 선 김지훈 작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해 공연한 ‘방바닥 긁는 남자들’의 속편 ‘길바닥에 나앉다’ 포스터 앞에 선 김지훈 작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태어나 두 번째 발표한 희곡(원전유서)으로 동아연극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했고 그 밖의 연극상들도 휩쓸었다. 세 번째 발표작(방바닥을 긁는 남자들)은 그 다음 해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올해 10월부터는 남산예술센터 상주극작가로 선정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에서 1년간 두 편의 신작 창작에 전념하게 됐다.

이 정도면 연극계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 두둑한 배짱과 슬럼프 모르는 실력으로 ‘괴물’로 불리는 프로야구 한화 투수 류현진과 외모마저 닮았다. 비록 주인공의 외모는 ‘미녀와 야수’의 야수 쪽이지만. 쭉 찢어진 눈초리와 바가지 헤어스타일의 괴물 극작가 김지훈 씨(31)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네 번째 창작극 ‘길바닥에 나앉다’(오동식 연출)로 관객을 찾은 그를 다시 만났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지난해 발표한 ‘방바닥을 긁는 남자들’의 후속편이다.

전작이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됨이 전혀 사람답지 못하고 사람이란 말을 붙이는 게 영 어색한 사람’으로서 ‘누룽지형 인간’을 창조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아예 반인반수(半人半獸)형의 인간이 등장한다.

―골방에 처박힌 누룽지형 인간과 대조적으로 길거리를 누비는 ‘스티커형’ 인간을 창조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초고에는 방바닥에 붙어 살면서 ‘동굴의 우상’에 사로잡힌 누룽지형 인간과, 길거리에 살면서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에 사로잡힌 스티커형 인간의 충돌을 그렸다. 하지만 극단(연희단거리패) 사정으로 ‘방바닥…’ 출연 배우들이 출연할 수 없게 되면서 ‘금수회의록’의 형식을 빌려 자연의 시각에서 인간 문명을 비판하는 작품을 완전히 새로 썼다.”

―그 반인반수를 다시 멸종 위기에 처한 ‘비분강개족’ ‘묵묵부답족’과 세상을 지배하는 ‘호시탐탐족’으로 나눴던데….

“비분강개족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나 독립투사, 민주화열사형의 인물이다. 묵묵부답족은 지조를 지키기 위해 타락한 속세를 등지고 자연 속으로 숨어든 산림거사라고 할까. 호시탐탐족은 절개를 잊고 눈앞의 이익에 쉽게 타협하는 오늘날의 소시민을 상징한다.”

―극에서 반인반수형 인간들이 아스팔트에 참기름을 발라 문명(아스팔트)과 자연(흙)을 분리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반란을 펼친다.

“나는 셰익스피어보다 세르반테스가 좋다. 세익스피어는 고귀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죽이고 학대하지만 세르반테스는 보잘것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웃음을 안겨준다.”

―네 작품의 주인공이 모두 물질적으론 헐벗고 가난하지만 지적으론 박학다식하다.

“잘난 사람이 잘난 말을 하는 것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충분히 보지 않는가. 연극으로라도 헐벗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밑바닥 존재들이 저 높은 곳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네 작품 모두에서 본능에 충실한 동물성과 희생을 감수하는 식물성이 교차한다.

“그렇다. 내 얕은 지식으로 봤을 때 세상의 본질은 동물성과 식물성의 싸움과 불화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그런 두 질서의 충돌을 보여주고 고민하게 하는 게 내 극작 목표 중 하나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4시간 반짜리 ‘원전유서’의 힘겨운 창작과정에서 4편가량의 작품이 파생돼 나왔다. 내년 남산예술센터를 통해 그중 두 편을 발표할 계획이다. 상반기 발표할 ‘풍찬노숙’은 앞으로 15∼30년 뒤 출중한 인재로 자란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차별적 문화 때문에 홍길동과 같은 인물이 된다는 내용이다. 하반기 발표할 ‘도둑년’은 새 왕조를 개국할 때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정권교체 후 발생하는 현실정치를 풍자한 작품이다. 이전 작품과 달리 작가적 자의식 가득한 관념적 언어를 배격하고 정감 어린 구체적 일상어로 관객에게 다가서려고 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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