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되 넘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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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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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 내한리사이틀 서울 공연

해석 ★★★★☆ 테크닉 ★★★★☆

27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의 분주한 분위기와 열기는 바깥의 쌀쌀한 날씨와 대비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영국 진출 후 가진 첫 내한 리사이틀 투어로 지방 6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었다. 내년에는 그를 볼 수 없다는 희소성이 더해져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1부는 베토벤의 소나타 두 곡. 셔츠까지 검은색 연주복 차림으로 등장한 김선욱은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이례적으로 낭만적이고 부드럽게 진행된 1악장에 이어 어둡고 격정적인 2악장에서 그는 왼손의 저역을 공고히 세우며 육중한 감정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레일을 깔아나갔다. 변주가 이어진 3악장에서는 섬세하게 조탁하는 음 하나하나가 영롱하게 빛을 냈다. 마지막 변주 칸타빌레는 점층적으로 고조되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곧바로 소나타 13번 ‘월광’이 이어졌다. 김선욱은 안개 자욱한 달빛이 비친 호수를 예상보다 천천히, 느긋하게 그려갔다. 시간이 멈춘 호숫가를 산책하는 고즈넉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무시무시한 노도 같은 3악장이 시작됐다. 앞선 1, 2악장이 3악장을 선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였다면, 성공적이었다. 청춘의 패기와 격정이 물밀 듯 전해지면서도 나이든 사람만이 가질 법한 노련한 통찰에 의한 절제와 제어가 느껴졌다.

인터미션 뒤 ‘아라베스크’로 시작된 2부의 슈만 연주에서는 절제의 반대급부로서 쾌적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두드러졌다. ‘크라이슬레리아나’에서 김선욱은 매 순간 내성적이고 해맑은 ‘오이제비우스’로 수렴하거나 저돌적이고 어두운 ‘플로레스탄’이 되어 발산했다. 그는 커브 길에서 능숙하게 몸을 숙이는 모터사이클 선수처럼 변화무쌍한 작품의 굴곡을 통과하고 있었다. 강조할 부분에서는 고개를 숙여 건반을 가까이 바라보다가 낭만적인 패시지에서는 몸을 최대한 뒤로 젖히는 그의 동작은 지휘자를 연상시켰다.

“앙코르는 한 곡밖에 준비 못했어요.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2500여 청중의 환호 속에서 그가 앙코르로 흔히 연주하는 끝 곡 ‘키예프의 대문’을 치겠거니 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선율은 놀랍게도 첫 곡 ‘프롬나드’였다. 결국 김선욱은 10개의 그림을 표현한 무소륵스키의 대곡을 앙코르로 완주했다. 풍부한 색채감과 선명한 다이내믹으로 그려낸 35분가량의 앙코르는 이날 연주회를 3부로 구성된, 인상 깊은 공연으로 완성시켰다.

김선욱의 연주회는 한 아티스트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는, 신뢰도 높은 표본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도약하는 그의 나이테에 그 어느 때보다 굵은 선을 새긴 연주회였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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