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낙엽빛 물든 음표, 가을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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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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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니코프 피아노 독주회
기교 ★★★★ 해석 ★★★★☆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는 6일 네 번째 내한 독주에서 강약과 완급을 폭넓게 조절하고 명징한 화성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뮤지컬파크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는 6일 네 번째 내한 독주에서 강약과 완급을 폭넓게 조절하고 명징한 화성을 선보였다. 사진 제공 뮤지컬파크
마지막 묵중한 음의 여운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에서야 청중은 어깨의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네 번째 내한 독주 리사이틀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는 예전보다 훨씬 숙성된 음악을 선사하며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악기를 제외한 주변의 조명이 꺼지자 검은색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은 건장한 체구의 멜니코프가 등장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로 연주에 들어갔다. 첫 번째 곡인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1악장 앞부분부터 그는 침착한 음감과 단단한 터치로 건반을 단번에 장악했다. 음표와 음표 사이, 소절과 소절 사이에 확실한 시간의 공백을 주어 전체적인 윤곽을 또렷하게 부각시키면서도 흐름이 결코 딱딱하지 않았으며, 거친 충돌음 따위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곡의 가요성을 충분히 살려낸 연주였다.

슈베르트 음악의 감흥이 채 가라앉기 전, 멜니코프는 두 번째 프로그램인 브람스 7개의 환상곡 Op.116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어조를 한결 부드럽게 하여 낙엽빛으로 물든 고적한 음악의 궤적을 꿈결 속을 유영하는 듯 로맨틱하게 그려냈다. 저역에서 고역에 이르기까지 깊게 울리는 종소리와 같은 음향이 그윽한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그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에 비해서도 기교가 뒤지지 않았으나 정공법을 택해 세심한 호흡에 집중하는 태도가 호감을 주었다. 제1곡 카프리치오를 마치고 나서 일부 청중이 박수를 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는 웃음 지으며 삼가라는 손짓을 보내 수습했다.

중간 휴식 후 2부에서는 쇼스타코비치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연주했다. 피아니스트가 스튜디오에서 전곡 녹음하여 5월 앨범으로 내놓았던 레퍼토리다. 시간 관계상 전반 열두 곡만 선택됐다. 멜니코프의 투명한 피아노 소리는 더욱 농도가 진해져 무게 중심 낮은 은백색 광채의 톤에 어슴푸레한 음영이 더해졌다. 그는 강약과 완급을 폭넓게 조절하여 전주곡의 추상적인 선율미, 푸가의 엄정한 대위적 음형, 살짝 어그러진 민요풍 곡조 등 세 요소를 황금비율로 엮어냈다. 제시된 동기가 해결, 반복되는 과정이 명징한 화성으로 규명됐다.

대곡을 마무리한 뒤 관객들의 호응에 답해 그는 프로코피예프 ‘덧없는 환영’ 10번과 쇼팽 전주곡 Op.28 6번 b단조를 내놓았다. 정갈한 앙코르였다.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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