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눈이 즐거워야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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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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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리명장’ 오른 롯데호텔서울 총주방장 이병우 이사

요리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병우 이사는 이제 한식의 격을 높이고 세계화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요리사는 참으로 행복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요리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병우 이사는 이제 한식의 격을 높이고 세계화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요리사는 참으로 행복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훌륭한 요리사는 타고나는 거예요.”

요리의 달인이 되는 비결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사실 약간 ‘절망적’이었다. 우문(愚問)에 대한 자책에 더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범인(凡人)의 허탈함이랄까.

롯데호텔서울의 총주방장 이병우 이사(55)는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요리사다. 이달 12일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은 그를 ‘대한민국 조리명장’으로 선정했다. 1986년 시작한 ‘기능명장’ 중 조리분야는 이 이사를 포함해 단 7명뿐. 현직 호텔리어는 그가 유일하다. 이 이사는 “주방장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자질이 더 중요하다”며 섬세한 미각, 미적 감각, 창의적 시각을 그 자질로 꼽았다.

그 스스로 어려서부터 운명처럼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것도 ‘훌륭한 요리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요리에 필요한 과학을 배웠다. “불로 굽거나 데치거나 날로 먹거나가 전부이던 요리가 영양학적 분석과 첨단 조리방법을 통해 진화하고 있어요. 예전엔 시금치를 데쳐서 푸른색을 추출하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클로로필’이라는 색소를 분리해 요리에 활용하는 식이죠.”

이 이사가 대학을 졸업하던 1981년은 이제 막 신라 롯데 등 특급호텔이 서울시내에 문을 열며 한국 관광업계가 빠르게 발전하던 때. 하지만 당시 특급호텔 주방장은 외국인 일색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최고 호텔의 주방장이 되겠다’고 다짐한 그는 요리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레콜포토푀(L'ecole pot-au-feu)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수련 생활은 엄혹했다. 매일 14∼15시간씩 요리실습이 계속됐다. 덕분에 그는 프랑스 정통요리를 기초부터 배울 수 있었고 1982년 롯데호텔 양식당 요리사로 입사했다.

자신감 넘치던 그였지만 얼마 안 돼 좌절해야 했다. “음식은 총체적인 문화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음식도 그 나라 문화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죠. 한국인인 제가 프랑스인의 요리방법을 따라만 가서는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겠더라고요.”

한국인인 그가 어떻게 서양요리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역으로 한국인의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고추장 된장 마늘 깨 등 우리 전통 식재료를 서양요리에 접목했다. 무수한 연구와 실패 끝에 그는 거위 간에 된장을 섞은 크림소스를 곁들인 ‘한복 입은 푸아그라’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1996년 ‘아시아의 위대한 요리사’ 서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요즘 이 이사는 자신의 요리사 경험을 총동원해 ‘한식 세계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6월에는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의 ‘클로드 부조’ 성(城)에서 프랑스 와인 장인들에게 ‘수라상’을 선보였다. 게살샐러드와 삼계죽, 관자요리, 신선로, 떡을 넣은 팥죽이 와인과 함께 하나씩 테이블에 올랐다. 프랑스인들이 거부감 없이 한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와인의 맛과 향과 조화된 한식을 내놓은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참석자들은 “한식이 이렇게 뛰어나고 우아한 음식인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한식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 그는 고급 음식으로서 한식을 되살리기 위해 우선 롯데호텔 한식당부터 리노베이션하고 있다. 전통 양반가와 남도 음식의 뿌리를 찾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식기 및 서빙 방법도 모두 바꾸는 것.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메뉴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세계 정상급 VIP들에게 한식의 맛을 알릴 계획이다. 후배 양성에도 열심이다. 지난해는 박성훈 요리사(20)를 지도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요리 부문 금메달을 땄다.

이 이사는 틈만 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다. 섬세한 미적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요리는 맛이 본질이지만 시각적 표현이 그 맛을 느끼도록 이끕니다. 아름답게 차려진 요리를 눈으로 보면 시각신호가 뇌로 전달되고 침샘을 자극해 ‘아, 맛있겠다. 먹고 싶다’ 하는 마음이 생기지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시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명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요리사는 소설가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는 소설가처럼 요리사도 자신의 메뉴를 위해 끝없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총주방장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그는 주경야독으로 관광학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말한 타고난 자질도 결국 불타는 열정과 끝없는 노력이 있어 빛나고 있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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