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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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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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병합에 자결 황현 선생,전집 ‘매천집’ 첫 한글번역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우국지사 매천 황현(사진)이 1910년 9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지식인으로서 망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고뇌가 담겨 있다.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으로도 유명한 매천의 전집 ‘매천집’이 처음 번역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약 3년에 걸쳐 번역한 ‘매천집’ 1∼3권을 24일 출간했다. ‘매천집’에 실린 시 약 800수가 담겨 있으며 전집 속 산문을 번역한 4권은 번역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올해 말 출간될 예정이다. ‘매천집’과 함께 퇴계 이황의 후손이자 경상도 양산군수였던 이만도의 ‘향산집’ 1권도 함께 나왔다. 이만도는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24일 단식 끝에 순국한 인물이다.

“…길 양쪽 유리 안엔 서양 등불이 들어 있고/공중을 가로지른 쇠줄에 전차가 빵빵대네/물 건너 바다 건너 온 세상이 모두 신식이고/우리 임금은 황제 칭호를 처음으로 가지셨네/우습다 기(杞) 땅 사람은 어리석음이 배에 가득/저 하늘이 어찌 갑자기 무너질 수 있으리오.”

전남 구례에 살던 매천이 서울을 방문해 지은 시의 일부분이다. ‘기 땅 사람’은 걱정이 많은 이를 빗대는 말로 매천 자신을 가리킨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서울 풍경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매천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지를 답사한 뒤 감상을 적은 시와 단발령이 시행된 뒤의 심정을 담은 시, 일제와 친일파를 늙은 여우에 비유한 시 ‘노호행(老狐行)’ 등도 있다.

‘매천집’은 중국에서 먼저 출간된 뒤 국내로 반입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로 국내 출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 머물렀던 매천의 친구 김택영이 매천의 지인과 후배, 제자들에게 호소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책을 출간했다. 국내로 반입한 뒤 일제에 책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임정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됐지만 당시 순국한 분들의 전집이 완역된 경우가 아직 없을 정도로 연구가 부족했다. ‘매천집’은 매천의 우국충정이 함축된 책으로 그의 독창적인 문장과 사상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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