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가을 부르는 일곱가지 무지갯빛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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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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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실내악 콘서트 선사하는 7인의 음악가들 리허설 현장

20대서 50대까지 분야별 한국대표 음악가들 참여
정명훈씨 “어릴적 누나들 반주 생각나”… 호흡 척척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내 연습실 앞. 문틈으로 또랑또랑한 피아노 소리가 새어 나왔다. 슈베르트 5중주곡 ‘송어’ 피아노 파트였다. 문을 열자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김수연, 첼리스트 송영훈, 베이시스트 성민제 씨의 얼굴이 보였다. 피아노로 빠른 악구를 반복해 치는 주인공은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었다. “이대로 수연이가 바이올린, 내가 비올라를 하나?”(이유라) “한 번씩 바꿔보고 연주가 잘 되는 쪽으로 하면?”(송영훈) “곤란하지, 흐흐.”(김수연)

다섯 사람은 23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7인의 음악인들’ 연습을 위해 모였다. 1997년 ‘7인의 남자들’이란 제목으로 시작한 이 콘서트 시리즈는 중간 중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비올리스트 유리 바시메트 등 세계적 명인들이 화음을 보탰고 7년을 쉬다 지난해 속개됐다. 올해는 ‘송어 5중주’ 외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대공’, 쇼팽의 ‘서주와 화려한 폴로네즈’ 등을 연주한다. ‘송어’에 끼지 않는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는 이날 연습에 빠졌다.

다섯 사람은 이날 ‘송어’를 처음 맞춰봤다고 했다. 그런데도 평생 맞춰온 것처럼 착착 감겨오는 ‘감(感)’이 느껴졌다. 송영훈 씨는 “다른 데서 여러 번 연주했고 서로의 개성을 잘 아니까 각자의 연주에 즉각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리듬이 미묘하게 흐트러질 때는 다섯 사람 전원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oh, embarrassing…(아, 난처해).’ 스케르초 악장의 도입부를 늦게 처리한 김수연 씨가 탄식하자 저마다 낄낄거리면서도 연주를 이어갔다.

“실내악은 순전히 재미로 하는 거예요. 마음이 편하죠.” 정명훈 씨의 말에 “이유가 뭐죠?”라고 묻자 그는 싱긋 웃으며 “틀려도 20%만 책임지면 되니까…”라고 했다. 순간 네 사람의 입에서 “bad answer!(나쁜 대답)”라는 야유가 터졌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젊은 음악가들이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를 연습하는 공간에는 소리로 빚어낸 맑은 시냇물 속에 파닥거리는 송어의 몸짓이 보이는 듯했다.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수연, 피아노 정명훈, 첼로 송영훈, 콘트라베이스 성민제, 비올라 이유라 씨. 전영한 기자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젊은 음악가들이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를 연습하는 공간에는 소리로 빚어낸 맑은 시냇물 속에 파닥거리는 송어의 몸짓이 보이는 듯했다.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수연, 피아노 정명훈, 첼로 송영훈, 콘트라베이스 성민제, 비올라 이유라 씨. 전영한 기자
연습하다 의견이 갈리면 어떻게 할까. ‘연장자’인 정 씨가 결정권을 가질까. 그는 “난 실내악을 하면서 한 번도 ‘리더’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누나들 반주를 했는데 어떻게 내가 리더가 돼요?(웃음)”

정 씨는 “무엇보다 실내악은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변화를 나타내는 모습이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줄리아드음악원에서 한국인은 ‘그저 솔로만 죽어라고 연습하는’ 걸로 유명했어요. 그만큼 여유가 없었죠. 이제는 달라졌어요. 실내악을 하면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음악을 대하는 의식이 성숙해진 거라고 생각하죠.”

연습에서도 그런 여유가 묻어나는 듯하다고 했더니 지난해 앙코르곡 연습할 때 얘기를 꺼냈다. “브람스 헝가리 춤곡을 연습했는데 잠깐 쉬는 동안에 저마다 악기를 바꿔서 호흡을 맞추며 장난을 치더라고요. 나만 손해죠. 할 줄 아는 게 피아노밖에 없으니까!” 그는 어릴 때 현악기를 포기한 사연도 털어놨다. “바이올린을 해보려니 소리가 영 마음에 안들더라고요. 귀가 ‘벙∼’ 하고. 경화 누나가 그렇게 잘하는 소리를 들어왔는데 처음 잡은 바이올린에서 소리가 잘 나겠어요?” 듣고 있던 김수연 씨가 “아니에요. 지금도 바이올린 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세요”라고 ‘고발’했다. 정 씨가 껄껄 웃었다.

올해 앙코르 계획을 묻자 그는 “아직 얘기 들은 거 없는데…”라고 했다. 김수연 씨가 “아까 악보 왔어요!”라며 악보 한 뭉치를 건넸다. 악보를 받아든 정 감독이 거슈윈의 ‘서머타임’ 전주를 치기 시작했다. 악보도 없이 송영훈 씨가 첼로의 피치카토로 화음의 ‘베이스 라인’을 뜯기 시작하자 김수연 씨와 이유라 씨는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착착 맞았다.

예술의전당 연주에 앞서 19일 오후 7시 반에는 경남 창원 성산아트홀, 20일 8시에는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21일 오후 7시 반에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 4만∼10만 원. 1544-1555, 02-518-7343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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