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얼굴’ 종로의 어제가 오롯이…

  • Array
  • 입력 2010년 8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부터 ‘종로 엘레지’ 특별전

“어쩜, 벽에 그려진 낙서 위치까지 똑같네. 여기서 장사해도 되겠어.”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종로 엘레지’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청일집 임영심 씨(61)는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 안을 둘러보면서 활짝 웃었다.

재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이 되살아났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른쪽에 위치한 종각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면 ‘르네쌍스’ 다방 간판과 파랗게 불을 켠 청일집이 보인다. 에스컬레이터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일부러 구경 왔다는 화신백화점은 바깥에 종로타워 사진으로 꾸민 코너 속에 숨어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로 엘레지’ 특별전 개막식을 찾은 시민들이 피맛골 골목을 재현한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로 엘레지’ 특별전 개막식을 찾은 시민들이 피맛골 골목을 재현한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 전시회는 서울역사박물관이 계획하고 있는 서울반세기종합전의 하나로 광복 이후 50여 년간 서울의 중심이었던 종로의 옛 모습을 재현해 전시했다.

전시회 관람객들은 유리창 너머 가게를 들여다보면서 직접 앉아 보기도 했다. 재개발로 가게를 정리하면서 쓰던 물품을 모두 박물관에 기증한 임 씨 역시 자신의 손때가 묻은 맷돌과 탁자, 도마 등을 어루만지면서 추억을 더듬었다.

보령약국-피맛골-청일집 등, 개발 이전 모습으로 복원돼

전시관은 현재의 종로 거리 모습을 코너마다 사진으로 꾸몄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 모습을 볼 수 있다. YMCA 건물로 들어가면 새로 복원한 옛 YMCA 야구단과 YMCA 수영장에서 연습하던 고(故) 조오련 선수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맞은편 햄버거 가게와 영어학원 간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면 종로서적과 종로양복점, 보신주단이 조그맣게 재현돼 있다.

남편과 함께 전시를 보러 온 김양선 씨(57)는 종로서적에서 발간한 서적들과 책 포장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땐 저렇게 책 표지를 싸서 줬었는데…. 아직도 집에 있어요.”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여는 ‘종로 엘레지’전. ①종로의 르네쌍스 다방 내부와 ②옛 종로양복점 사진, ③1970년대 창신동 봉제공장을 재현한 코너.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여는 ‘종로 엘레지’전. ①종로의 르네쌍스 다방 내부와 ②옛 종로양복점 사진, ③1970년대 창신동 봉제공장을 재현한 코너.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낙원상가를 지나 세운상가로 가면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와 다리가 달린 옛날 텔레비전이 쌓여 있다. 세운상가 기계공이 쓰던 공구와 무전기, 불법복제 음반과 각종 게임기도 전시돼 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허수영 씨(43)는 “아이가 이전에 사용됐던 게임기가 신기한지 자꾸 물어본다”면서 “나중에 아들이 컸을 때 지금 내가 느끼는 것처럼 뭉클해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종로5가의 약국거리에는 보령약국이 자리 잡았다. 약장에는 일호차고약, 이명래고약, 치질환 등 이전에 쓰던 약이 전시됐고 용각산, 구심, 겔포스 등 아직도 사용되는 약도 진열됐다. 창신동 봉제공장 코너에서는 봉제공이 실제로 일하는 모습과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색색의 실타래와 누렇게 변한 다리미 판, 봉제공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들었을 법한 가수 심수봉의 음반 등이 보였다. 전시회장 한편에는 종로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영상과 함께 지하철 1호선 설계도면 등도 전시됐다.

종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좋지만 “좀 더 종로 분위기가 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왔다. 홀로 전시장을 찾은 김승환 씨(69)는 “젊은 시절 친구들하고 술 한잔 마시고 신나게 종로 바닥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며 “그 시절 음악이 흐르거나 과거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했으면 더 실감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강홍빈 관장은 “과거 종로는 서울이었고, 서울은 종로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작업을 추진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는 13일부터 10월 3일까지. 무료. 02-724-0274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