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현실서 길 찾기… ‘복잡계 이론’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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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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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등 인과관계로 설명 안되는 현상 규명

국내도입 5년만에 연구 네트워크 사단법인화
언어-교통-전쟁 등 다양한 주제로 영역 넓혀

원칙이 없는 것 같은 복잡함도 새로운 질서로 단순해질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복잡계 연구모임이 사단법인 ‘복잡계 연구네트워크’로 새로 출범했다. 윤영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왼쪽)이 9일 복잡계 이론을 젊은 연구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원칙이 없는 것 같은 복잡함도 새로운 질서로 단순해질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복잡계 연구모임이 사단법인 ‘복잡계 연구네트워크’로 새로 출범했다. 윤영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왼쪽)이 9일 복잡계 이론을 젊은 연구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경제학, 물리학, 도시계획학, 국어국문학, 언어학, 바이오뇌공학, 실내건축학, 사회복지학, 보건학, 심리학, 행정학, 영화학….

뙤약볕이 내리쬐던 9일 오후 2시. 각각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40여 명이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관 건물 지하 1층 세미나실로 모였다. 올해 7월 출범한 사단법인 ‘복잡계 연구네트워크’가 복잡계 이론을 소개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길찾기’ 연속강연의 첫 번째 강의. 총 9회로 구성된 연속강연은 유료(총 40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원(50명)을 거의 다 채운 47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복잡계 연구는 2005년 말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과 학자 등 40여 명이 복잡계 연구네트워크라는 연구모임을 만들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경제·경영학과 물리학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시작됐지만 5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보건학으로 박사후과정을 밟고 있는 장숙랑 박사(38)는 “노인들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다양하고 복잡해 사회정책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건강에 대한 인간의 복잡한 요구 패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강연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언어학을 전공하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김혜영 연구원(28)은 “수많은 신조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특정 단어가 사라지거나 존속하게 되는 조건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 복잡계 이론을 적용해보고 싶다”고 했다. 수강생은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직업도 대학원생, 기업 대표, 회사원, 연구원 등으로 다양했다.

복잡계 이론이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은 강연 제목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복잡계 이론에 대한 원론적인 소개(윤영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물론이고 △사회학에서의 활용 모델(이기홍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복잡한 정치현상과 권력의 미학(민병원 서울시립대 IT정책대학원 교수) △기업 경영 측면에서의 활용 모델(김창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사회학자인 이기홍 교수는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수치화해 보여주는 사회연결망 분석이 대표적인 복잡계 방법론”이라며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보건협력 네트워크를 복잡계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 기존 조직도상의 협력체계와는 다른 실질적인 구조를 파악해 보건행정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기존 사회학계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중요시한 막스 베버처럼 비선형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어왔다”며 “복잡계 이론과 기존 사회학적 관점을 잘 꿰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잡계 이론은 전쟁에 대한 분석 틀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정치학자인 민병원 교수는 “기존 정치학은 제1, 2차 세계대전 같은 큰 전쟁과 지역 간 분쟁 같은 작은 전쟁을 분리한 채 전쟁의 원인과 분포를 설명했다”며 “복잡계 관점에서 보면 큰 전쟁과 작은 전쟁 간에도 상호연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구성원 간의 단순한 상호작용을 근간으로 한 예측 모형을 이용해 시장에서 특정 기업이 권력을 갖게 되는 과정 등을 시뮬레이션하는 연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밖에도 복잡계 연구는 개미의 집단행동, 교통망, 생태계 먹이사슬, 기업생태계,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5년 동안 정회원 100명, 일반회원 1만 명으로 회원이 늘어나긴 했지만 복잡계 연구는 아직 주류에 편입되지는 못하고 있다. 젊은 연구자는 관심을 두고 있지만 기존 학계 관행에 익숙한 중견 학자의 참여는 적기 때문. 이날 강연한 윤영수 수석연구원은 “복잡계 이론을 공부한 젊은 학자들이 대학의 교수직이나 연구소 등으로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어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복잡계 이론

단순한 인과관계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대상은 자연과 사회를 가리지 않는다. 복잡계는 구성원의 단순한 상호작용이 규모화되고 축적되면서 특정한 ‘창발(emergence)’이나 패턴을 보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미국 대기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즈의 ‘나비 효과’가 전형적인 복잡계 현상이다. 1984년 미국 샌타페이 연구소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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