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 PD의 반상일기]로마선 로마법 한국선 한국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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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삼성화재배 재대결 사태,규정 분명히 해야 분쟁 없어

승패가 명확하고 편파 판정도 들어설 틈 없는 바둑에서도 분쟁이 간혹 발생한다.

6일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통합예선 준결승 김은선 3단과 중국의 루지아 2단의 대결. 중국의 루 2단이 따낸 사석 하나를 무심코 상대 돌 통에 넣었다. 수읽기에 여념 없던 김 3단은 흘린 돌을 담는 것이라 여기고 대국을 이어갔다. 극미한 형세 속에 김 3단이 마지막 공배를 메웠는데 결과는 김 3단의 반집 승이었다. 원래 덤 6집 반인 바둑에선 마지막 공배를 메우면 반집 지거나 1집 반 이긴다. 그런데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루 2단은 복기를 통해 승부를 가려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 3단은 결과가 나왔으니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양국 관계자들이 1시간 넘게 논란을 거듭한 끝에 입회인인 심종식 6단이 한국기원 심판위원회와 중국 측 의견을 수렴해 재경기 판정을 내렸다. 오후 8시 반에 속개한 재경기는 11시 반이 넘어 김 3단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통합예선 결승에서 김 3단은 전날 대국의 후유증 탓인지 114수 단명국으로 무기력하게 패하며 세계대회 본선 진입에 실패했다.

흥미로운 것은 똑같은 상황이 6년 전에도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대회, 같은 입회인, 그리고 같은 재경기 판정이었다. ‘황-금(黃金) 분쟁’이라 불렸던 황이중 6단과 김강근 4단 간의 대국이었다. 그때도 황 6단이 따낸 돌을 상대 돌 통에 넣어 분쟁이 생겼다. 중국 룰에선 사석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따낸 돌을 상대의 돌 통에 집어넣어도 승패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국 기사들의 습관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

해결책은 명확하다. 로마법, 즉 대회 규정을 분명하게 만들면 된다. 6년 전 황 6단도, 이번 루 2단도 ‘복기’를 주장했다. 복기란 승패를 확인한 후 승부처를 되짚기 위한 것이지 승패를 확인하거나 뒤집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한국 룰에선 사석을 별도로 보관하는 것은 기본이다. 고의는 아니지만 사석에 관한 비상식적 행위를 한 순간 실격이 선언돼야 한다. 물론 중국 측도 사석을 상대 돌 통에 넣는 것은 습관적 행동일 뿐이고 승패는 원래 대국 결과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관련 규정이 명확했다면 분쟁의 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6년 전과 같은 우를 범하고 말았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시행하지 못한 것이다.

바둑TV 편성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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