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상대주의와 근본주의 사이…공존의 길은 건전한 의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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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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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 대한 옹호/피터 버거, 안톤 지더벨트 지음/252쪽·1만4000원/산책자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 때까지 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커피에 우유를 넣을지 시럽을 넣을지 정하고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색상과 디자인, 기능과 가격을 놓고 저울질한다. 이 정도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회로 시야를 확대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각양각색의 집단 출신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대끼면 종교와 정치, 과학 등의 영역에서 ‘각자의 진리’와 마주치며 혼란이 생긴다. 가치 충돌과 이로 인한 모순 속에 사람들의 믿음은 얄팍해지거나 단단해진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피터 버거와 네덜란드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안톤 지더벨트는 다양한 ‘믿음’이 소용돌이치는 사회에 ‘의심’을 권한다. 이들이 말하는 의심은 딴죽 거는 행위가 아니라 심사숙고하는 과정이다. 즉, 확신을 얻고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 의심하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근대사회의 다원화가 사회를 상대주의와 근본주의라는 두 가지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고 지적한다. 상대주의는 초월적 신비를 믿었던 과거와 달리 어떤 종교나 지식도 절대적 믿음을 줄 수 없는 현대적 상황에서 비롯됐다. 서로를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다원적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 해결책으로 여길 수 있지만, 도리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상대주의가 낳은 허무주의가 자칫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까지 관용하면 사회를 지탱하던 규범과 도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믿음을 갖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억지로 만든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는 근본주의도 저자들은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꼽는다. 자신이 옳다는 안정감과 믿음을 잃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은 쇼비니즘과 테러리즘, 전체주의 국가라는 과격한 형태로 나타난다. 나치와 같은 극단적인 근본주의 산물은 20세기에 끝났지만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근본주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극단적인 믿음, 그 두 가지 길에서 저자들은 ‘건전한 의심’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의심이 건전하기 위해서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그것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존엄성에서 찾는다. 다양성이 들끓는 사회지만 양보할 수 없는 보편적 공동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소아성애나 인종차별, 테러리즘, 강간 등은 상대주의나 근본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책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방안도 서술한다. 그러나 저자들도 말하듯이 그 해결책은 확실하거나 완벽하지 않다. 이들은 양 극단의 중간지점에서 대략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려 한다. 낙태 문제가 한 예다. 어느 시점에서 태아가 인간적 존엄성을 갖는다고 볼지에 대해 저자들은 ‘모른다’고 고백하지만 논의를 통해 용납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저자들은 다원주의로 인한 쟁점은 등급화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명예살인과 같이 ‘금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이 확실한 문제는 엄금하는 한편, 이슬람교도들이 모스크를 지을 권리처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신성모독죄의 부활’이나 무슬림이 요구하듯 학교에서도 남녀 구분을 해야 하는지 여부처럼 판단이 모호한 회색지대에 대해서는 신중한 의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상대주의와 근본주의라는 두 소용돌이 사이를 항해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을 저자들은 ‘건전한 의심이 바탕이 된 중용의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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