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섬은 영감 살찌우는 정신의 안식처”

  • Array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물고기 여인숙’ 이용한 씨

이용한 씨는 “섬은 느림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궁극의 여행지였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용한 씨
이용한 씨는 “섬은 느림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궁극의 여행지였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용한 씨
누구나 여행지로 한 번쯤 떠올리곤 하는 섬. 시원한 바다와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는 세속의 복잡하고 떠들썩한 기운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허락해야 갈 수 있는 이곳을 시인 이용한 씨(42)는 4년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해 국내외 두메를 구경하고 다닌 총 14년의 삶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여행지가 바로 섬이다. 이 씨는 4년 동안 전국의 섬 44곳을 여행한 뒤 이 중 34곳의 풍경과 문화를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우도 울릉도 독도 등 비교적 일반인에게 알려진 섬도 있지만 도초도 낙월도 횡간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 더 많다.

“처음에는 섬에서 사라지는 문화를 기록하려고 갔죠. 갈 때마다 사라지는 초가집, 초분(송장을 풀이나 짚으로 임시로 덮어두는 장례법) 등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런데 섬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기록보다 섬 자체의 매력에 더 빠져버렸죠.”

그를 섬으로 이끈 것은 섬에 남아 있던 ‘문화’였다. 1994년 우연히 들른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이 씨는 초가집 30여 채를 보고 경이로워했다. 그러나 이후 갈 때마다 초가집은 사라져 2006년에 갔을 때는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출어 나갔던 자식이 돌아와 부모의 주검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긴 풍습인 초분도 점차 사라졌다. 섬을 돌아다니며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그 즈음인 2005년이었다. 이후 4년간 시간만 나면 섬을 찾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곤 하지만 책 곳곳에는 그 흔적이 남았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는 영국 수병과 거문도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있고, 충남 보령시 외연도에는 중국 제나라의 전횡 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 등이 있다.

시인은 섬에서는 도회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했다. 섬사람들은 산책을 하던 자신에게 ‘굴이나 먹고 가소’라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건넸고, 권유를 사양하지 못한 시인은 모닥불 앞에 앉아 구운 굴과 함께 술대접까지 받곤 했다. 느림의 미학에 취했던가.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시인은 풀밭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고립돼 있고 한정된 공간이라는 데서 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섬의 매력이지요. 풍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이면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더 즐겨 보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섬이죠.”

섬사람들의 시간과 시선에 맞추면 모든 섬이 각각 다른 색깔로 다가올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사람들은 섬에 가면 바다 풍경과 해수욕장, 일출, 일몰을 즐기는 것으로 그쳐요. 섬에 있는 돌담 구멍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해녀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 섬의 고요함 그 자체도 즐겼으면 합니다.”

그는 시 ‘모서리’(전남 완도군 청산면 모서리)에서 ‘적막을 참지 못해 나는/뒷산 동백에게 통성명을 건네 보지만,/그의 조용한 습관 앞에서는 통하지가 않는다’고 섬의 고즈넉함을 노래했다.

섬 여행은 그의 시의 자양분이 됐다. 2006년에 낸 시집 ‘안녕 후두둑 씨’에는 섬 여행 초기에 받은 영감이 배어 있다. 이 시집을 보고 연락해 온 독자 중 한 사람이 지금의 아내이니 섬이 그에게 중매한 셈이다.

제목이 ‘물고기 여인숙’인 이유를 물었다. “4년 동안 마치 제가 물고기가 돼 이 섬과 저 섬을 오가며 섬을 삶의 안식처로 삼은 것 같았습니다. 섬은 넉넉한 마음으로 여행자를 받아 주는 여인숙이었지요.”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