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몸은 하나, 얼굴은 4개? 스타 마케팅, 괴물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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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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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이 돌아가며 주인공 연기… 뮤지컬 쿼드러플 캐스팅 소극장까지 확산

《“몸은 하나인데 얼굴은 4개?”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이 아니라 최근 국내 뮤지컬의 캐스팅 경향을 빗댄 말이다. 국내 뮤지컬에서 한 배역에 여러 배우를 투입하는 ‘캐스팅 마케팅’이 효과를 보자 대형 뮤지컬을 중심으로 배우가 4명(4팀)까지 중복 투입되는 쿼드러플 캐스팅이 속속 선보였고 최근에는 소극장 무대로까지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작품보다는 배우에 의존하는 스타 마케팅의 전형”이라고 우려했다.》○ 4명이 돌아가며 주연 맡아

14일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배신을 그린 미스터리 멜로물. 주인공 준수 역에는 최성원 정민 김진우 강청광이 캐스팅됐다. 전체 출연 배우가 4명뿐인 소규모 공연이지만 주연에만 배우 4명이 뽑힌 것이다. 이번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경력 10년(최성원)에서부터 무대 경험이 없는 배우(강청광)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강청광은 연습이 부족해 언제 무대에 설지조차 확정돼 있지 않다. 한 누리꾼(아이디 xellosoo)은 정민에 대해서도 “복합적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정민 씨의 준수 역 (연기가)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5월 14일 서울 신촌 더스테이지에서 공연을 시작한 남성 2인극 뮤지컬 ‘쓰릴 미’는 2007년 국내 초연 당시에는 두 배우가 한 팀을 이룬 원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2명씩 짝을 이룬 총 4팀(8명)이 돌아가며 무대에 선다. 팀이 ‘짐승 페어’(최지호 최수형) ‘아이돌 페어’(김하늘 지창욱) 등으로 불릴 정도로 작품 자체보다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달 말에는 가수 출신 이지훈과 오종혁이 짝을 이뤄 출연한다.

주연 배우가 많아지자 집중력을 갖고 극에 몰입하기도, 다른 배우와 조화를 이루기도 힘들다. ‘쓰릴 미’는 한 페어가 2, 3일씩 연달아 공연하기 때문에 보통 한 번 무대에 오른 뒤 일주일 넘게 휴식을 갖는다. ‘달콤한 인생’의 주연 배우들은 사흘에 한 번꼴로 무대에 오른다.

‘달콤한 인생’과 ‘쓰릴 미’는 소극장 뮤지컬로, ‘햄릿’(2008년) ‘헤드윅’(2009년), ‘모차르트’(2010년) 등 중대형 뮤지컬이 선보였던 쿼드러플 캐스팅이 뮤지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뮤지컬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쿼드러플은커녕 더블, 트리플 캐스팅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주연에는 한 배우가 캐스팅돼 장기 공연을 이끌고 ‘커버’나 ‘언더 스터디’(제2, 제3의 예비 배우)가 대기한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한 배우가 주연을 맡으면 그만큼 작품에 충실할 수 있고 결국 작품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몇 년 새 국내에서는 커버나 언더 스터디란 말 자체가 사라졌다. 연출가가 4명의 주연과 함께 일해야 하는 쿼드러플이란 말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 쿼드러플의 속셈은 마케팅 효과

쿼드러플의 마케팅 효과는 크다. ‘쓰릴 미’는 개막 이후 두 달여 동안 2회 이상 관람한 관객이 1000명을 넘겼고 10회 이상 ‘몰아 본’ 관객도 100명을 웃돌았다. 공연 초반인 ‘달콤한 인생’도 재관람하는 관객이 늘고 있다.

제작사인 다온커뮤니케이션즈의 박현미 대표는 “6개월 장기공연인 탓에 4명을 캐스팅했다”면서도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쿼드러플 캐스팅의 확산은 결국 작품이 아닌 배우 중심으로 국내 뮤지컬시장을 재편해 작품의 질적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며 우려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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