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1000회 맞은 뮤지컬 ‘빨래’의 힘]팍팍한 서울살이 공감의 눈물 씻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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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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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추민주 씨
연출 추민주 씨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의 단칸방에 사는 임시직 서점 직원인 미혼녀. 주인집 할머니는 거동 못하는 장애인 딸을 보살피고, 옆방 사는 아주머니는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팔고, 옆집에는 몇 달째 체불된 월급에 가슴 아파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산다.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는 이들은 오늘도 찌든 빨래를 하얗게 빨며 고단한 일상을 이렇게 노래한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달동네 사람들의 팍팍한 서울살이를 눈물로, 때론 웃음으로 담아낸 뮤지컬 ‘빨래’. 2005년 서울 장충동 국립극단에서 처음 막을 올린 뒤 현재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이 25일 1000회를 맞는다. 이 작품은 장기 공연임에도 평균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하고 있다. 이달 중 관객 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 20억 원 매출에 이어, 올해 25억 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도, 유명 연예인도 없는 이 작은 뮤지컬의 힘은 무엇일까.

“글쎄요. ‘내 이야기다. 공연 안에 내 모습이 있다’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게 ‘빨래’의 힘 아닐까요.” 극본과 연출을 맡은 추민주 씨(35)는 이렇게 말했다.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뮤지컬 ‘빨래’의 노랫말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힘과 희망을 준다.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빨래’가 25일 1000회 공연을 맞는다. 사진 제공 수박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뮤지컬 ‘빨래’의 노랫말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힘과 희망을 준다.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빨래’가 25일 1000회 공연을 맞는다. 사진 제공 수박
뮤지컬에 나오는 무대는 ‘구질구질’하다. 잡화와 함께 봉지쌀을 파는 슈퍼, 삼겹살과 소주를 파는 선술집, 전봇대에는 빛바래고 찢겨진 전단들이 붙어 있다. 오물세 5000원을 두고 주민들이 다투고, 출퇴근길 달동네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는 마을버스는 늘 만원이다. 적어도 한 번은 살아봤고, 그도 아니면 한 번은 TV에서 봤을 법한 달동네는 잊었던 과거를, 소외된 우리 이웃을 돌아보게 만든다.

추 씨 또한 그랬다. “대구에서 대학(영남대 국문과)을 졸업한 뒤 1999년 서울에 올라와 달동네에서 살았어요. 그때 경험했고 만났던 이웃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죠.”

서점에서 일하고, 달동네에서 살며 옥상에서 빨래를 툴툴 너는 주인공 나영은 다름 아닌 그의 모습이다. “제가 살던 석관동 옥탑방은 그 동네가 다 보이는 높은 곳이었어요. 깨끗이 빨래를 한 뒤 내려다보는 동네 풍경, 그 많은 집의 옥상에 널린 빨래들이 인상 깊었지요.”

그는 그곳에서 필리핀 노동자와 이웃사촌이 됐고, 2003년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반대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이들의 얘기를 묶은 ‘빨래’를 썼다.

2005년 첫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빨래’는 출연진이 일곱 번 바뀌었다. 현재 출연하는 배우들. 사진 제공 수박
2005년 첫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빨래’는 출연진이 일곱 번 바뀌었다. 현재 출연하는 배우들. 사진 제공 수박
“사실 상업 뮤지컬 시장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빨래’라는 작품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웃음) 일부 관객은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1000회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초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는 관객들의 공감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40여 명을 초청한 무대가 있어서 특별히 몽골 노래를 삽입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따라 부르시고 너무 좋아해서 기뻤죠.” 이 작품은 매주 이주노동자들을 공연에 초대하고 있고 2011년 말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추 씨는 “작품을 보시고 동시대 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했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더 새롭게 극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난 빨래를 하면서/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 내고/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추 씨와 작품 스스로가 하는 다짐 같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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