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비자금 되찾아야” 40년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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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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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박사 평전 첫 출간

■ 황실 재산 환수 노력
獨은행 예치금 일제가 불법인출
관련서류 모아 1919년 美의회 제출
1948년엔 한국정부에 보고서

■ 눈물겨운 한국 사랑
대한제국 말기한글교과서 제작
황실 외교고문으로 독립운동
아리랑에 서양식 음계 붙이기도

《“내탕금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소. 내가 고종 황제의 수임권자로서 돈을 받게 되면 즉시 그 돈을 한국에 돌려줄 것이니 알아서 처분하시오.”(1948년 12월 22일, 호머 헐버트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일부)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의 기일(8월 5일)을 앞두고 그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책이 나왔다. 헐버트에 대한 첫 평전이다.》

저자는 금융인 출신으로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김동진 씨. 체이스맨해튼은행 한국대표, JP모건체이스은행 한국회장 등을 지냈다. 대학 시절 헐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를 읽고 감동받아 헐버트를 연구해왔다.

이 평전은 특히 고종이 해외 은행에 맡겼다가 일본에 빼앗긴 거액의 내탕금(황실 재산)과 이를 되찾기 위한 헐버트의 노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고종의 내탕금 관련 연구는 많았으나 내탕금이 사라지고 광복 이후까지 이를 찾으려 한 헐버트의 노력을 조명한 사례는 처음이다.

평전에 따르면 헐버트는 고종이 1903년 중국 상하이 덕화(德華·독일-아시아)은행에 51만 마르크(당시 대한제국 총세입의 1.5%)를 맡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 돈은 일제가 인출해 압수했으며 현재 250여억 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시 고종의 ‘독일 비자금’을 관리한 주한 독일공사 콘라트 폰 잘데른이 내탕금은 모두 100만 마르크가 넘었을 것으로 보고한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본보 2008년 6월 27일자 A2면 참조
사라진 ‘황제의 비자금’ 50만 마르크


①1880년대 후반 서울의 관립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헐버트 . ②1942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 있는 헐버트. 왼쪽이 헐버트, 오른쪽이 이승만이다. ③1949년 7월 29일 한국을 방문하려고 
인천항에 도착한 헐버트(가운데).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①1880년대 후반 서울의 관립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헐버트 . ②1942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 있는 헐버트. 왼쪽이 헐버트, 오른쪽이 이승만이다. ③1949년 7월 29일 한국을 방문하려고 인천항에 도착한 헐버트(가운데).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헐버트는 1909년 고종에게만 돈을 내준다는 덕화은행장의 확인서와 주중 독일공사의 확인서, 예치금 증서, 고종 황제의 위임장을 들고 상하이를 찾았다. 그러나 그 돈은 이미 일본이 가져간 뒤였다. 1908년 통감부 총무장관 쓰루하라가 독일공사에게 자금 이전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고 독일공사관과 덕화은행은 고종의 예치금 증서도 받지 않은 채 돈을 내줬다.

저자는 그 이후 헐버트의 행적을 상세하게 추적했다. 헐버트는 변호사를 고용해 통감부 초대 외무총장 나베시마가 쓴 인출금 수령 영수증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들을 모아 진술서를 만들어 1919년 8월 18일 미국 의회에 제출하는 등 사라진 내탕금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1948년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내탕금을 찾아달라는 고종의 어명을 받고 경위를 추적한 보고서와 관련 서류 일체를 보냈다.

헐버트는 191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된 뒤 미국에서 지내다가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고 내한했다. 그는 당시 감회를 묻는 AP통신 기자에게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둔 헐버트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에 묻혔다.

저자는 이 평전을 쓰기 위해 40여 년간 헐버트의 유족 등이 보관하고 있는 메모와 사진을 찾고 헐버트의 모교인 다트머스대의 교지도 뒤졌다. 조선에서의 헐버트 활동과 강연 기고문을 실은 신문 자료도 모으고 관련 서류를 구하기 위해 외교통상부와 규장각,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으로 달려갔다.

내탕금을 찾으려는 노력 외에도 이 책은 대한제국 말기에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리랑에 최초로 서양식 음계를 붙이는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헐버트의 활동도 폭넓게 조명했다. 저자는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던 헐버트를 기억하는 것은 한국인의 도리이자 의무”라며 “한 나라의 황제가 호소 한 번 못해보고 백주에 돈을 빼앗겼는데, 이 돈을 되찾는 데 정부와 국민이 의지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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