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사진예술 새 지평 연 두 거장…‘만 레이’전 - ‘워커 에번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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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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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이 꽃 피운 예술…만 레이

감성이 스며든 다큐…워커 에번스

만 레이의 ‘키키, 오달리스크’(12.2cm×17.4cm, 젤라틴실버프린트, 1925년). 단 한 장만 있는 사진으로 앵그르의 그림 ‘오달리스크’를 차용한 작품이다. 만 레이는 전설적 모델이면서 전위적 예술가들의 동지였던 키키 드 몽파르나스를 통해 회화 속 이미지를 재해석했다. ⓒ MAN RAY TRUST/ADAGP, Paris 2010
만 레이의 ‘키키, 오달리스크’(12.2cm×17.4cm, 젤라틴실버프린트, 1925년). 단 한 장만 있는 사진으로 앵그르의 그림 ‘오달리스크’를 차용한 작품이다. 만 레이는 전설적 모델이면서 전위적 예술가들의 동지였던 키키 드 몽파르나스를 통해 회화 속 이미지를 재해석했다. ⓒ MAN RAY TRUST/ADAGP, Paris 2010
가난으로 헐벗은 사람들의 지친 표정과 척박한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초라한 살림살이. 사진을 통해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 농민과 노동자들의 남루한 삶이 한눈에 드러난다. 미국에 이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궁핍한 시대의 초상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작가 워커 에번스(1903∼1975)의 사진전은 다큐 사진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화비평적 시각을 담은 그의 사진은 현대 사진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불린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워커 에번스의 회고전으로 건축양식을 찍은 사진부터 대공황기 다큐 작업, 지하철에서 촬영한 ‘지하철 초상’ 연작 등 1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워커 에번스가 다큐 사진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 미국 작가 만 레이(1890∼1976)는 예술 사진의 새 역사를 쓴 거장이다. 그는 회화와 조각만이 시각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진을 예술로 승격시킨 주인공.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술의 기존 법칙에 도전한 다다와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활동한 만 레이를 사진으로 조명했다. 사진의 예술성을 탐색한 국내외 사진가 47명의 작품도 함께 살펴보는 ‘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전이다.

○ ‘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전

회화에서 출발해 사진 드로잉 콜라주 오브제 영화 등 다방면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한 만 레이. 화가로 성공하지 못했어도 사진이 재현과 기록의 도구라는 생각을 벗어난 작품으로 예술사에 우뚝 선 존재가 된다. 당시 사진은 회화를 닮고자 했으나 그는 사진만이 가진 조형적 힘을 앞세운다. 카메라 없이 감광지 위에 물체를 올려놓고 빛에 노출해 이미지를 드러내는 레이오그램 등 새로운 기술이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전시에선 사진 위에 데생을 한 ‘앵그르의 바이올린’ 등 가공과 연출, 리터치와 이중인화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한 만 레이의 사진 63점을 선보였다. 우주에서 본 지구처럼 추상적 이미지를 담은 ‘먼지의 배양’부터 예술 사진의 백미로 평가받는 ‘키키, 오달리스크’까지 그의 폭넓고 풍요로운 예술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8월 15일까지. 700원. 02-2124-8800

○ ‘워커 에번스 회고전’

워커 에번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라배마 주 소작농 아내의 초상사진(1936년). 미국의 대공황 시절, 농업안정국(FSA)의 의뢰를 받은 작가는 척박한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며 빼어난 다큐 사진을 남겼다.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워커 에번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라배마 주 소작농 아내의 초상사진(1936년). 미국의 대공황 시절, 농업안정국(FSA)의 의뢰를 받은 작가는 척박한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며 빼어난 다큐 사진을 남겼다.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살짝 찌푸린 이마 아래 삶에 지친 눈매와 꾹 다문 입술이 인상적인 여성의 초상 사진. 남부 소작농의 궁핍하고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워커 에번스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19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이 경제공황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마련한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해 당시 농민과 노동자의 삶, 생활공간, 일상적 도구를 기록으로 남겼다. 객관적이고 건조한 다큐 사진과 달리 그의 작품엔 조형적 공간성과 시적 감수성이 스며 있는 게 특징.

스스로 ‘서정적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한 작업은 사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면서도 따스한 체온을 품고 있다. 궁핍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작가적 관점을 느낄 수 있어 울림이 깊은 전시다. 친필 서명이 들어간 사진으로 구성된 2개의 포트폴리오가 눈길을 끈다. 9월 4일까지. 5000∼7000원. 사진을 통해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거장들. 두 전시는 후대의 예술이 그들로부터 얼마나 큰 자극과 영감을 받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사랑에 진보가 없듯이 예술에도 진보란 없다. 그것을 하는 다른 방식들만이 존재할 뿐이다.”(만 레이)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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