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에 연연않고 속세 말에 개의치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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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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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참된 삶’ 조언
다산 친필 ‘증언첩’ 발굴

거처-생활-공부방법 등 담겨
어린 후배-서얼 시문도 추천

다산 정약용이 1834년 가을 전남 해남의 대둔사 승려 혜즙에게 준 친필첩. 승려의 몸가짐과 소양에 관해 적었다. 사진 제공 정민 한양대 교수
다산 정약용이 1834년 가을 전남 해남의 대둔사 승려 혜즙에게 준 친필첩. 승려의 몸가짐과 소양에 관해 적었다. 사진 제공 정민 한양대 교수
다산 정약용이 본 승려의 참된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1834년 가을, 73세인 다산은 경기 남양주로 찾아온 해남 대둔사(지금의 대흥사) 승려 철선(鐵船), 혜즙(惠楫)과 헤어지며 글 한 편을 써주었다. 승려의 거처와 공간 구성, 생활 방식과 공부 방법이 담겨 있는 증언(贈言·남에게 선물 삼아 주는 글)이었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일민미술관 소장자료 중에서 이 글이 포함된 친필첩 ‘다산송철선증언첩(茶山送鐵船贈言帖)’을 발굴했다. 그는 이를 번역해 7월 초 발간되는 학술계간지 ‘문헌과해석’ 여름호에 발표할 예정이다.

다산은 이 글을 통해 승려의 거처에 대해 “(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뚫고 가서 산꼭대기 밑의 평온하면서도 젖샘이 맺혀 있는 땅을 얻어 초암 너덧 칸을 얽는다”고 설명했다. 승려의 암자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지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함께 도를 닦을 벗으로는 “승려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속세의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개의치 않는다” “수행자는 좋은 법려(法侶)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승려의 계율에 너무 얽매이는 사람이면 피곤하다. 경솔하게 망동해서 이랬다저랬다 해도 못 쓴다”라고 조건을 들었다.

글 속에서 다산은 승려에게 주는 지침이라는 점을 고려해 ‘도덕경’과 ‘장자’를 유교 경전보다 앞세워 읽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때로 고기가 생기면, 살생을 경계하는 헛된 나무람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고 세세한 계율보다는 큰 틀의 깨우침을 강조하거나 “(제자들이) 속수(束脩·입학할 때 내는 돈)로 가져오는 쌀 몇 말에 군침 흘리는 것은 천한 장부의 행실”이라고 승려들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문화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 추사 김정희와 자하 신위의 글씨, 단원 김홍도의 그림, 초정 박제가와 영재 유득공의 시를 곁에 두라고 조언했다. 까마득한 후배나 서얼의 시문, 속화(俗畵)로 이름 높았던 그림을 추천했다는 점에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산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시 짓기를 갈고닦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다산은 선비의 이상적인 주거에 관해 글을 남긴 바 있는데 승려의 문화생활 지침을 담은 이번 친필첩과는 보완관계”라며 “이번 친필첩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데다 다산의 심미안과 문화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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