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뛰놀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우주의 일부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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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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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대안학교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

2006년 폐교 임차해 개교
英-數외 도예-농사도 배워
창의력 향상 예능 과목 강조

“신자 2000여 명의 성당서 주임신부를 할 땐 오히려 성직으로부터 소외되고 본당의 관리인이 된 느낌을 받았어요. 저에겐 아이들과 만나는 이곳이 성당입니다.”

모자를 삐딱하게 돌려 쓰고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가운데). 그는 “개성 강한 아이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민병선 기자
모자를 삐딱하게 돌려 쓰고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가운데). 그는 “개성 강한 아이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민병선 기자
《학교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나와 나무 밑 벤치와 개울가에 앉아 자연풍경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객원 교사인 대구시립교향악단 단원 한은주 씨가 학교에 들러 드럼 수업을 열었다. 경쾌한 드럼 소리가 학교를 둘러싼 산골마을에 울려 퍼졌다. 9일 들른 경북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산자연학교’의 오후 풍경이다.》“점심시간에 맞춰 잘 왔습니다.”

로만 칼라가 달린 사제복을 예상했는데, 티셔츠에 모자 차림의 교장 정홍규 신부(56)가 인사를 건넸다. 정 신부는 “여기는 아이들이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밥을 아주 잘 먹어 식사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신부의 학교 자랑이 이어졌다.

“화장실과 식당 오수는 ‘BMW 시스템’으로 정화됩니다. BMW는 박테리아(Bacteria), 미네랄(Mineral), 물(Water)을 이용한 4단계 친환경 정화체계죠. 농사 수업 시간에 유기농법으로 키운 감자, 배추, 사과가 아이들의 식탁에 오릅니다.”

생태 대안학교를 표방하는 이 학교가 문을 연 것은 2006년.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정 신부는 대구 고산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며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는 2003∼2006년 독일 쾰른대에서 생태영성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뒤 폐교를 임차해 기숙형 대안학교를 열었다.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교육에 찌들어 살더군요. 영세를 주는 것보다 아이들을 구제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학교에는 8명의 상근교사가 초중학교 과정 38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는 영어, 수학 등과 도예, 농사 등 대안교과과목을 배운다. 특히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여주는 예능과목을 강조한다.

이 학교에는 그의 생태영성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교육목표에 대해 ‘정치, 문화, 종교의 이념을 초월한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통한 ‘모든 종의 공의회’를 실현하고자 한다’라고 적혀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자연과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세상 만물이 우주의 일부이며, 자신이 수많은 시간의 진화를 통해 탄생한 고귀한 존재임을 알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건은 어렵지만 교사들의 만족도는 높다. 미술교사 박재란 씨는 “아이들이 마냥 풀어져 있는 것 같지만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내는 걸 보면 기특하다”며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서도 대안교육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7학년(중1 과정) 박지원 학생의 어머니 김경숙 씨는 “아이가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으려 할 만큼 학교생활에 만족한다”며 “개성을 존중하는 학교생활 속에서 진정 원하는 장래희망을 찾아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정 신부에게 교장이 아니라 신부로서의 욕심은 없는지 물었다.

“주임신부 생활을 하며 오히려 성직으로부터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자가 2000여 명이었는데 미사 때 이외에는 만나기 힘들었죠. 본당의 관리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저에게는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이곳이 성당입니다.”

정 신부는 본당 주임신부와 학교장을 겸하다 올해부터는 학교에서 숙식하며 교장직에만 전념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언어철학을 강의하러 아이들 속으로 달려갔다. 그는 “2013년 고교과정 개설 준비에 바쁘다”며 “앞으로 살아있는 자연학교를 잘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장선생님 힘내세요”라며 스스럼없이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영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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