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반주 내려받아 컴퓨터로 녹음 “나도 음반 낸 가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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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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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용 앨범-간단한 음반 제작 ‘홈레코딩의 세계’
오디오인터페이스 갖추면 ‘1인 밴드’에도 도전 가능

《FM라디오 기능이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에 빈 테이프를 넣고 라디오에서 신청곡이 흘러나올 때마다 녹음 버튼을 눌러가며 만든 노래 테이프는 1970, 80년대 가난한 연인의 인기 선물 목록이었다.
행여 눈치없는 라디오 DJ가 노래 중간에 곡 소개를 할까 봐 신청곡을 적은 엽서에는 “녹음해야 하니까 곡 소개는 노래 틀기 전에 해 주세요”라는 추신이 따라붙곤 했다.
마우스 클릭이면 1분에 노래를 수십 곡씩 내려받는 요즘에는 이런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마추어 음악가나 일반인을 중심으로 컴퓨터를 활용해 소장용 앨범이나 간단한 음반을 만드는 데서 재미를 찾는 ‘홈레코딩족’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내 방이 바로 녹음 스튜디오”


홈레코딩은 컴퓨터 사양의 진보와 홈레코딩 프로그램의 보급 덕분에 가능해졌다. 컴퓨터에 장착된 사운드카드에 마이크만 연결해도 기본적인 녹음과 재생은 가능하다, ‘쿨에디트’나 ‘누엔도’ 같은 홈레코딩 전문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노래 반주에 내 목소리를 입혀 나만의 노래 앨범 정도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MR다운넷’, ‘뮤토피아’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MP3 파일 형태의 반주(MR) 음원에 마이크로 내 목소리를 녹음해 홈레코딩 프로그램으로 합치는 작업(믹스다운)만 하면 완성이다. 이렇게 만든 음원을 MP3플레이어로 옮기거나 USB메모리, CD로 저장하면 감상은 물론 선물도 가능하다. 노래방에 있는 히트곡의 MR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곡당 가격은 평균 3000원 선. 홈레코딩 프로그램으로 반주와 보컬의 소리 크기를 조절하거나 목소리에 촉촉한 ‘에코’ 효과를 넣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스마트폰으로 홈레코딩에 도전해도 좋다. 아이폰용 유료 어플리케이션인 ‘보이스 밴드(Voice Band, 2.99달러)’는 리드 기타나 드럼 등 악기를 선택한 뒤 마이크에 입으로 ‘빠빱빠∼’ 하고 소리를 내면 해당 악기가 이에 맞춰 자동으로 연주를 해 준다. 녹음과 재생은 물론 옥타브나 템포 조절도 가능하다. 애플 앱스토어에는 이와 비슷한 홈레코딩용 어플리케이션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악기를 다룰 수 있다면 홈레코딩의 재미는 배가된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낙원상가 등에서 파는 ‘MBOX’ 같은 오디오인터페이스(USB 등으로 컴퓨터에 연결하는 오디오 입출력 단자를 갖춘 홈레코딩용 기기. 20만∼40만 원)를 구입하면 연주를 고품질 디지털 신호로 바꿔 컴퓨터에 옮길 수 있다. 오디오인터페이스를 살 때 따라오는 전문 홈레코딩 프로그램은 음원의 편집, 조정을 쉽게 만들어 준다. 한 소절만 녹음한 연주 코드나 화음을 반복 재생시키거나, 따로따로 녹음한 목소리와 반주를 합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런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1인 밴드’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악기 못 다뤄도 나는 1집 뮤지션”


악기를 못 다뤄도 좌절은 금물이다. 매킨토시 컴퓨터용 프로그램 ‘거라지 밴드’를 비롯해 웬만한 홈레코딩 프로그램은 드럼, 기타, 오르간 같은 악기부터 관객의 야유나 박수소리까지 수십∼수백 종의 디지털 음원이 내장돼 있다. 악기상가에서 10여만 원만 주면 살 수 있는 ‘마스터키보드’를 오디오인터페이스에 연결하면 건반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가상 악기를 쉽게 연주할 수 있다.

복잡한 연주기교가 필요없이 기본적인 리듬과 비트가 반복되는 랩 장르 음악은 이 정도 프로그램만 활용해도 반주 음원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지난해 홈레코딩으로 EP앨범(싱글앨범과 정규앨범의 중간 형태의 음반) ‘기타의 붐이 온다’를 내놓은 인디밴드 ‘H.기타쿠스’의 리더 김용진 씨는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도 복잡한 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듯 정성과 열의만 있다면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홈레코딩의 재미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미디유저넷’이나 ‘미디존’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홈레코딩 기초강좌를 들으면 장비의 구입이나 활용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홈레코딩 초보자에게 장비 욕심은 금물이다. 더 좋은 소리에 대한 집착으로 마이크, 키보드, 신시사이저, 스피커 등을 고사양 제품으로 바꾸다 보면 수천만 원은 우습게 지출되는 것이 홈레코딩의 세계다.

홈레코딩 취미는 자칫 이웃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홈레코딩을 하다 보면 “시끄럽다”는 민원을 유발하기 쉽다. “홈레코딩의 성패는 장비가 아닌 이웃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홈레코딩족은 지물포에서 구입한 흡음재나 계란판을 붙여 소리의 반사와 울림을 줄인다. 하지만 이는 ‘흡음 효과’는 있어도 ‘방음 효과’는 없기 때문에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음반은 지나가는 차량의 경적소리나 개 짖는 소리, 냉장고 모터 소리 등을 종종 듣게 된다. 이 때문에 음질을 중시하는 홈레코딩족은 녹음 시 잡음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여름 더위에도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치는 것은 기본이고 에어컨과 선풍기까지 끈다. 마이크 둘레에 갓처럼 씌우는 차음장치나 작은 공중전화 박스 모양의 녹음부스를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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