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이 가족으로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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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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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씨 신작소설 ‘물’

“사람의 특성을 물질에 비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그려”

김동주 기자
김동주 기자
거두절미의 간결한 제목이다. ‘물’(자음과모음). 소설가 김숨 씨(36·사진)가 펴낸 신작소설의 제목이다.

그의 장편소설들에서는 일종의 맥락이 읽힌다. 1970년대 중동의 산업역군이었던 아버지를 모래 이미지로 형상화했던 ‘백치들’, 조선소가 들어선 마을을 배경으로 노동자의 고통을 그려냈던 ‘철’.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철과 모래의 상징적 이미지에 이어 이번엔 물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 소설은 물이란 액체처럼 한 가지 해석이나 의미의 틀로 고정되지 않는다. 증발하다 넘치고 스며든다 싶더니 어느새 다시 사라져버린다.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김 씨를 만났다. 그는 “사람보다는 고유한 속성이나 특질을 지닌 물질에서 상상력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며 “물이란 물질에 대한 관심이 소설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 ‘물’에 대한 관심이란 과연 무엇일까. 수질, 생태환경, 물부족, 물난리…. 물을 보는 관점은 광범위하다. 작가의 관심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좀 더 본질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지만 성경에 나오듯 심판의 역할도 한다. 생명을 주지만 모든 걸 한순간에 휩쓸어버리기 때문”이라며 “결코 소멸하지 않는 존재,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이 바로 물”이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물은 물의 특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인격화된다는 점이다. 물(어머니) 이외에도 불(아버지), 소금·공기·금(자녀들)이 등장한다. 그는 “물의 성질을 지닌 사람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자연스레 불, 소금, 공기 같은 것들이 따라 나오게 됐다”고 전했다. 작가는 이들을 가족관계로 압축했다. 물의 특성에 대비되거나 친화되는 다른 물질이 등장함으로써 소설은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의 조합으로 치밀하게 얽히게 된다.

저수지에 있는 300만 t의 물을 몰아내고 집을 지은 아버지(불)는 단 한 방울의 물인 어머니를 쫓아내지 못했다. 소금인 ‘나’는 존재하기 위해 어머니(물)를 멀리 해야 한다. 쌍둥이 동생인 ‘금’은 아버지(불) 곁에 있을 때면 변형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작가는 물질의 성질을 빌려 한 가족 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새롭게 탐색해간다.

“사람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욕망의 관계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서로 이기려는 관계, 하나로 뭉치려는 관계, 질투하고 선망하는 관계…. 그 모든 관계가 우리 가운데 있잖아요. 비단 가족뿐만이 아니라 직장, 사회 안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작가는 지난해 하반기 미국 아이오와대의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한 남편(소설가 김도언 씨)을 따라 미국에 체류하며 계간 ‘자음과모음’에 이 작품의 연재를 마쳤다. 그는 성실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출판사 ‘열림원’에서 오랫동안 편집자 생활을 병행했지만, 그동안에도 단편집과 장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퇴근하면 소설만 쓴다더라’ ‘집에 쌓인 단편과 장편이 수북하다더라’는 소문도 퍼졌다. 그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웃으면서도 “소설을 한 편 시작하면 가지를 쳐서 계속해서 쓸 거리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봉주 선수를 좋아하는데 만약 내가 마라토너가 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어요. 하나를 시작하면 그것만 하니까 운동선수가 됐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여리게 보이지만 뚝심 있는 작가의 성정을 잘 보여주는 말 같았다. 그는 “이 책이 매일 접하는 주변의 물질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해보거나 서로 대립하고 관여하며 얽혀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매개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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