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시작하며 속고… 정신차리면 또 속고… 끝난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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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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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이거 몰카죠.”

연극 ‘하땅세’ 중 연극 오디션에서 뽑힌 ‘배우’ 김한백(전치홍)의 대사다. 나름 잘한다고 생각한 그의 연기를 지켜본 괴짜 연출가 이기붕(장혁진)이 ‘똥덩이’라며 독설을 퍼붓자 아연실색한 끝에 나온 반응이다. 돌아오는 것은 더 지독한 모욕 뿐. 모멸감을 참지 못한 한백이 욕설을 퍼부으며 연습장을 떠나자 남은 ‘배우’들은 동요한다. 저 지독한 연출가와 계속 작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그 순간 함박웃음을 안고 연습장으로 돌아온 한백은 그 모든 것이 기붕과 사전에 맞춰놓은 연기였다고 털어놓는다.

의표를 찔린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무대 위 배우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반전에 반점을 거듭하는 이 작품의 전채요리에 불과하다. 연극은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을 닮았다. 차이는 모독의 대상이 관객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라는 점이다.

‘하늘에서 땅끝까지 세게 간다’며 끊임없이 ‘진짜’를 요구하는 이기붕은 그를 숭배하는 작가(정진아)와 반신반의하는 네 명의 배우를 계속 극한으로 몰고 간다. 그에게 현대 연기이론의 대명사인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사실주의 연기론은 가짜다. 배우를 아예 극중인물과 혼연일체를 만드는 폴란드 연극연출가 그로토프스키의 극한의 연기론이 진짜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치부가 거침없이 폭로된다. 다른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기부터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리얼리티고 무엇이 연기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빚어진다. 바로 현실과 연기가 뒤섞인 ‘몰카’의 상황이다. 그와 함께 어딘지 어색하고 가식적이던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처럼 변한다. 그들은 독이 잔뜩 올랐다가 끝내는 울고불고하면서 ‘배우’의 껍질을 벗어던진다.

이는 비단 무대 위 이야기만이 아니다. 작품 제목과 같은 극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극의 원작은 미국 극작가 낸시 헤이스티의 ‘연출가’다. 이를 번안한 이가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펴보라’라는 뜻으로 극단의 이름을 지어준 극작가 윤병조 씨다. 그 아들이자 극단의 대표이며 연출가인 윤시중 씨는 그 뜻을 자기 방식대로 풀면서 극 내용의 상당 부분을 극단의 이야기로 바꿨다.

극이 종반부로 치달으면서 100석 규모 소극장 전체가 무대로 바뀌고, 무대세트까지 무너져 내리는 극적 반전은 그렇게 현실과 극의 경계에 대한 연극적 질문을 육화해낸다. 가히 ‘컬트연극’이라 부를만 한 작품이다. 2만 원.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76스튜디오.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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