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책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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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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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song, 김영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Forest song, 김영민 그림 제공 포털아트
책의 세계는 숲이고 밀림이고 우주입니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싶지만 책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을 읽어라 혹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도처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지만 혼자 독서의 길을 개척하는 건 구도의 길을 가는 일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적절하게 고를 수 있는 기회보다 과대 포장된 광고 전략과 여러 매체의 여론 몰이가 압도적일 경우가 많으니 개별적인 독서 노선을 설정하고 나아간다는 게 성자가 되는 길만큼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독서에 참다운 뜻을 품었던 사람마저도 몰개성적인 베스트셀러의 노예가 되게 만드는 게 작금의 독서시장 풍토입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독서에 뜻을 둔 사람이 품어야 할 첫 번째 화두가 그것입니다. 독서가 남과 다른 관심 영역의 확대와 심화를 위한 투자라면 남이 읽는 책을 무작정 따라 읽는 부화뇌동의 독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중 하나입니다. 그런 길을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는 구축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참다운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온 독특한 관심 영역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철학적 관심, 신화적 관심, 종교적 관심, 우주적 관심, 수학적 관심, 고고학적 관심, 생물학적 관심, 유전공학적 관심, 심리학적 관심, 교육학적 관심 등등. 학교공부에 쫓기고 먹고사는 일에 쫓겨 한없이 뒤로 미뤄둔 그것을 발견하는 첫 순간, 그 사람은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세계 구축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탐구자가 됩니다.

자기 관심 분야의 첫 책을 읽고 나면 절로 다음에 읽을 책이 결정됩니다.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으면 방향이라도 설정됩니다. 그렇게 한권 한권 자기 관심 분야로 들어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길이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궁극에 이르러 모든 분야의 길이 하나로 통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지점에 이르면 사통팔달, 세상 만물의 이치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자각과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베스트셀러) 읽었니?’ 하고 좌중의 한 사람이 모두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읽지 못한 사람은 뭔가 죄를 지은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젓습니다. 어떤 사람은 읽지도 않고 읽은 시늉을 하며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은근슬쩍 보태기도 합니다. 그 순간부터 좌중의 대화는 베스트셀러를 읽은 사람이 주도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요즘 시청률이 가장 높은 드라마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면 너도나도 말을 하기 위해 좌중이 왁자해지고, 또 다른 누군가 정치 쪽으로 얘기를 돌리면 기껏해야 야당이나 여당으로 갈라져 단박에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이 모든 정황이 반영하는 것, 획일화 내지 양분화 경향입니다.

책은 남에게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읽는 것입니다. 타인과 다른 독서 목록을 가진 사람은 시류와 무관한 탐구의 길을 걸어 자기 존재의 우주적 연결고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 지점에 이르면 서로 다른 모든 지류가 하나로 만나 근본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독서는 자기 인생의 구도 행위인 동시에 창조적인 삶의 원천이 됩니다. 지금 그대는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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